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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과 원망
민수기 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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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과 원망이 적당한 경우에는 삶의 동력이 됩니다. 자신과 공동체에 대하여 문제 의식을 갖는 행위가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공동체의 진로를 조정하려면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무책임하고 맹목적입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불평과 후회와 원망은 악의적입니다. 마약과 같아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일종의 심리적 탈출구를 맛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서 질식하고 맙니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는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 가시가 있어서 불평할 수 있지만 장미가 있어서 기뻐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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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1세대를 상징하는 미리암과 아론이 죽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모세도 죽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약속의 땅을 향한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돔 땅을 가로질러 갈 기회가 막혀 할 수 없이 우회하여 홍해길로 접어들자 백성의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21:5) 원망하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동안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번번이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평과 원망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성이란 이렇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한 악의’라고 왜곡합니다. 은총의 음식을 ‘하찮은 음식’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누구라도 불평과 원망이 습관화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은혜를 베풀어도 하찮아 보입니다. 그것이 불평과 원망의 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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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단단히 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21:6). 하지만 하나님은 백성의 회개와 모세의 기도를 기다렸다는 듯이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21: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반복하여 같은 죄를 짓는 백성을 혼내시면서도 속으로 아파하며 치유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재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큰 은총과 믿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선물 포장지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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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데도 백성의 태도는 처음 출애굽의 시점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출애굽을 무효화하고 환애굽을 주장하는 불신앙은 광야에서뿐만 아니라 훗날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존재하였으니 그 끈질긴 악의 생명력이 끔찍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예 근성입니다. 짓눌리면서 쾌락을 얻는 피학대 도착증과 유사합니다. 이는 세상 만물을 다스려야 할 존엄한 인간에 대한 배신입니다. 맘몬과 권력과 명예의 힘에 굴종하는 마조히즘이 신앙의 옷을 입을 때 가장 악마화하고, 반 하나님 나라 성향을 갖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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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없는 신앙은 늘 위태롭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늪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신뢰하는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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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87 예수 앞에 나오면 https://www.youtube.com/watch?v=vPxLy2iU9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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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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