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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발락의 늪
민수기 23:2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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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의 집요함이 계속됩니다. “함께 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이면, 거기에서, 나에게 유리하도록 그들을 저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3:27 새번역). 저주와 악담을 도모하는 일에 이렇게 열심이니 세상에 악이 편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열심이 악을 일삼는 열정보다 월등하지 않으면 결코 세상은 밝아질 수 없습니다. 세상의 타락 현상은 악한 자의 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한 의지를 가진 자의 낙담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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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 처음에 이스라엘을 마주한 곳은 바알 신상이 있는 높은 언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발람은 발락의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립하는 주체적인 특이한 민족으로서 번성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22:7~10). 두 번째로 발락이 안내한 곳은 이스라엘 진영의 일부만 보이는 비스가산의 소빔 고원이었습니다. 발람은 이곳에서,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들소처럼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 미신과 점술로는 해코지할 수 없는 백성, 사자처럼 맹렬한 이스라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22:13~24). 이제 세 번째로 발락은 발람을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발람의 예언 기조는 변함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처가 아름다워 마치 강가의 정원같고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들 같으며 풍성과 번성과 왕성에 이를 것’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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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에 목숨을 건 발락의 모습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락은 종교 행위가 삶의 모든 영역을 좌우한다고 믿는 전형적인 종교인입니다. 이 점에 일면 동의합니다. 인생의 원칙으로 제시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가르침은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 행위가 의식에만 머물면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마치 십일조 등 헌금을 바치고 새벽기도에 빠짐없이 나오고 성수주일을 하는 등 종교 행위를 열심히 하면 자신의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행위는 일상의 삶에서 물질 가치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산 자의 헌물이며, 성수주일은 모든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산 자의 징표입니다. 헌금에 무슨 신기가 있고, 성수주일이 전가의 보도인양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발락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한 종교인처럼 보이지만 신앙을 왜곡한 세속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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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은 종교적 모해가 정치적 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자입니다. 한마디로 손바닥에 王를 새기면 세속 권력을 획득할 수 있고, 명혈을 찾아 집터를 옮기면 길흉을 조종할 수 있고, 몸에 부적을 붙이고 다니면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얼치기 미신광입니다. 나라가 부강하려면 건강한 정치철학에 기반하여 산업을 골고루 육성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바른 정책을 실행하여야지 어찌 상대의 몰락이 자신의 길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점술과 사술과 미신의 힘으로 권세를 유지하고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어처구니없습니다. “악을 피하고 착한 일을 하여라. 네가 이 땅에서 오래 살리라”(시 37:27). 오늘도 주야장천 발락의 길만 모색하는 이들이 새겨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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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일수록 발락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직업 종교인의 유혹도 여기에 있습니다. 발락의 인생관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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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hhttps://www.youtube.com/watch?v=iv67i60a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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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7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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