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히10:19-31 |
---|---|
설교자 : | 배장섭 목사 |
참고 : |
너희는 생각하라
본문말씀 히브리서 10장 19-31절
1. 서론
케냐의 ‘기쁜소식국제교회’ 아마 구원파인 것 같은데, ‘천국 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면 굶어 죽어야 된다’는 말을 듣고 무려 109명이 굶어 죽었다나 어쨌다나?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가 하면 며칠 전 통일교에서는 몇 천 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나 어쨌다나? 그냥 단순히 보면 좋은 것 같지만 그 역시 깊이 들어가 보면 피가름 교리에 속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렇듯 거짓 복음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그런 거짓 복음에 속지 않도록 29절 마지막에 보면 “---너희는 생각하라”고 권고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유사 복음 가운데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구원파입니다. 왜?
그들은 이신칭의 구원론의 영향을 받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으로 과거, 현재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죄조차도 해결 받았기 때문에 죄 지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구원 받는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과연 복음에서 말씀하신 참된 구원론일까요?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이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런 분들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지고 “너희는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므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우선 먼저 26-27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할 불만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는 것은 전후 문맥상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새 언약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옛 언약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 언약 백성이 되었다 할지라도 “짐짓 죄를 범한즉”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죄를 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짐짓 죄를 범한다”는 말은 “자진해서, 고의로, 기꺼이, 즐겨서”라는 “헤쿠시오스”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구약 율법에 보면 살인죄를 범해도 고의로 범할 수도 있고, 부지중에(고의가 아닌) 범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부지중에 범한 경우에는 전후 사정을 고려하여 살인죄를 면할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제단 뿔을 잡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짐짓’ 즉 고의로 범한 경우에는 아무리 도피성의 제단 뿔을 잡는다 할지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 받아도 죄를 범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짐짓’ 즉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된다고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할 분만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구원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라고 말씀하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예정’과 같은 단어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그런 오해를 하다 보니 신앙생활을 우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과연 그렇게 우습게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29절 말씀에 보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하물며’라는 말은 “얼마나 더 많은” 또는 “얼마나 더 큰”이라는 ‘포소스’라는 비교급을 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새 언약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약을 좇아 살지 않고 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자진해서 죄를 범하면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옛 언약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 다음 30절 하반절에서 31절 말씀에 보면 “ ----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신 말씀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울진저”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신 말씀을 우리가 아노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 할지라도 예외 없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의 지난 모든 삶을 놓고 청지기가 정산하는 것처럼 그렇게 정산하게(?) 되는데, 그런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다고요? 한 치의 거짓됨이 없이 은밀한 것조차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세상 법정처럼 속이면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죄를 범했다고 해서 하나님조차 모르실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30절 상반절에 보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아주 중요한 말씀인데, 바울이 로마서 13장 8절에 보며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원문에 보면 “빚”이라는 말은 ‘오페이로’리거 해서 돈을 빌리게 되면 그 돈을 갚을 의무가 생길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또한 계약이나 언약을 체결하게 되면 그 언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그 때 사용하다는 단어로서 쉽게 말하면 돈 빌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새 언약 백성이 된 성도에게는 단 한 가지 의무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의무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새 언약 백성들에게 명하신 새 계명인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던 것처럼 ‘사랑해야 할 의무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남을 정죄하고 심판할 권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로마서 14장 말씀은 바로 그 점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데, 10절에 보면 “내게 어찌하며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자매가 된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그렇게 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렇게 부패하고 변질된 이유도 아무나 함부로 받아 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드시 검증하고 받아 줘야 됩니다. 그렇게 검증하는 절차가 바로 학습, 세례 문답인데, 제가 볼 때 그것도 손을 좀 볼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검증해도 신천지와 같은 영적 사기꾼들이 몰래 침투해서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그렇게 가만히 침투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라고 수없이 권고하신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검증하여 받아들인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지식적으로나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어떻게? 정죄하고 심판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권고는 하되 반드시 어떻게? 사랑으로 권고하여 에베소서 4장 15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 성장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여 노력해야 되지 정죄하고 내 좇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권고해도 듣지 않는 경우에는 내 쫓으라고 하셨지만^^ 그것도 정말 신중하게 잘 살펴야 됩니다. 왜? 아차 잘못하면 알곡을 뽑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예 심판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를 그냥 내 버려두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이 무조건 제자로 받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목회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아차 잘못하면 도리어 내가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결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시편 49편 20절에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비록 하나님은 인간을 존귀한 자로 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놀라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아메바에게 진화한 것처럼 오해하면 개,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진화론에 근거해서 우생학이 나왔는데,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런 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같은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육체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절대로 무시하거나 우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유익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개, 돼지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역으로 ‘거룩한 것’이나 ‘진주’를 던져 주면 그 진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한 것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를 해하려는 줄 오해하고 좋은 것을 던져 준 사람을 해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 역시 어리석을 짓일 수 있기 때문에 좋고, 선한 것이라고 아무에게나 막 던져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는데, 저도 옛날에는 저 신천지와 같은 곳에 속은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억지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었지만 그런 가짜 복음에 빠진 사람들 중에 정말 아나무인격인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을 전하다가 아나무인격의 사람이나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몇 번 해 보고 그냥 내 버려두는데, 솔직히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 말고도 전도해야 할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굳이 진주인지 똥인지조차 분별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진주라고 백날천날 설명해 줘 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데, 특히 목회자들 중에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 교단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교단 교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정말 많은데, 뭐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 속으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왜?
성경에 보면 속이는 사람도 문제지만 속는 사람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신앙의 문제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디 단 하나 뿐인 천하보다 귀한 영혼 절대로 후회함이 없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