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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민수기 2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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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주재자, 장남 아니어도 된다. 나이순으로… ” 어제(2023. 5. 11) 뉴스의 주요 기사 제목입니다.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 민법상 ‘제사 주재자’는 유족 간의 합의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맡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행위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귀결을 왜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적자 중심의 가계를 통하여 수많은 여성과 서자들이 받았을 차별과 불편을 생각하면 시대에 갇힌 의식이 딱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무려 3500년(?) 전에 이런 결정을 하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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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판단할 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그의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 율법에 언급되지 않아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침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 곧 므낫세 지파에 속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딸들은 모세에게 요구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27:3~4).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가 당당합니다. 그녀들에게 땅은 단순히 삶을 잇는 수단이나 재산이 아니라 가문의 역사이며 정체성이자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지도자의 선의와 동정을 구하느라 스스로 비겁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녀들의 기개가 칭찬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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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로서도 뜻밖의 질문에 쉽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이 답하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27:7) 슬로브핫 딸들의 예는 규범화되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굴하게 허리를 조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 문제를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 역사의 피해자로서 부끄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비하하며 일본의 선의에 기대려는 외교는 참으로 수치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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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성을 마지막 남은 식민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만큼 여성의 권리가 차별받는 곳도 드뭅니다. 유교 제사에서조차 여성이 제사 주재자가 되는 세상인데 교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 심합니다. 특히 보수교단에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금하는 일은 유교만도 못한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입니다. 신학대학원에서 신입생으로 여학생을 뽑아 학비 받으며 3년 동안 가르치면서도 목사 안수에서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국교회의 갈 길이 참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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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받습니다. 비굴해지지 않고, 비겁해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당당함을 늘 유지하겠습니다. 함께 하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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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10 시온성과 같은 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JuB9pV5YD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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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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