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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싸움
민수기 3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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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욕망에 대하여 끝없이 집착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집과 탐심을 우상에게 절하는 행위(삼상 15:23, 골 3:5)라고 지적합니다. 목회 성공이라는 욕망, 자기 신학과 사상에 대한 절대성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우상 숭배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면 할수록 비난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의 티를 나무라는 자세로 제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입니다. 행복에 이르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을 성취하여 행복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줄여 만족을 얻는 길입니다. 세상은 큰 욕망을 성취하여 큰 쾌락에 이르라고 부추기고, 종교는 욕망을 줄여 진정한 행복을 맛보라고 권합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욕심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욕망을 다스리는 이가 있고, 욕망의 지배를 받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세속에 대하여 주어야 할 메시지는 욕망을 줄이고 불편하게 살기를 통해 호모 심비우스가 되는 일입니다. 재생 에너지를 확장하는 RE100도 아니고, 원전을 가동하여 욕망을 충족하는 CF100은 더더욱 아닙니다. 욕망의 상대어는 무욕이 아니라 자족과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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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에게 요단 동편의 땅을 조건부로 허락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대적을 그 앞에서 몰아낼 때까지, 당신들 모두가 무장한 채로 주님 앞에서 요단 강을 건넌다면, 그 땅이 주님 앞에서 정복되는 날, 당신들은 돌아갈 수 있고, 주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들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소. 그리고 지금 이 땅은 주님 앞에서 당신들의 소유가 될 것이오.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오. 이러한 죄를 짓고서는, 당신들이 절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아시오”(32:21~23 새번역). 이에 두 지파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모세는 요단 동편의 땅 분배에 므낫세 반쪽 지파를 추가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적전분열 양상으로 번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모세의 지도력과 해당 지파의 성실한 약속 이행의 다짐, 그리고 다른 지파의 암묵적 동의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분란과 위기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선한 리더십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지금 우리는 선한 리더십의 부재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깨어 기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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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하여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최일선에서 다른 지파보다 더 열심히 기여할 명분을 가졌습니다. 다른 지파는 기업을 싸워서 얻어야 하지만 해당 지파는 이미 얻은 땅이니 이긴 싸움을 싸우는 셈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열 지파처럼 세속과 싸워 투쟁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도 하지만 갓과 루우벤 지파처럼 이미 확보한 기업을 확정하기 위하여 이긴 싸움을 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같은 싸움을 하여도 이긴 싸움에 임하는 태도는 훨씬 대승적이며 자신감 넘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 역사를 하나님 나라 운동과 연관짓는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이미 이긴 전쟁에서 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둠의 시대를 밝음으로 사는 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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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차고 넘치는 욕망의 흐름에 교회도 편승하는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시대를 거스르는 용기를 이 시대 교회에게 주십시오.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게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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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2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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