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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이상
예술은 무한한 상상력을 전제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그려도 될까? 거짓과 상상의 간극이 묘하다. 거짓말은 일상에서 사소하게 행하여진다. 위기를 모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아니면 상대를 골탕 먹이거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별 생각 없이 한다. 성경은 이를 엄하고 있다.
바르비종은 프랑스 파리 인근 퐁텐블로 숲의 작은 농촌이다. 이 마을에 화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콜레라가 유행하면서부터이다. 루소와 코로, 밀레 등이 전염병을 피해 이 마을로 들어왔는데 뒤프레, 도비니, 디아즈, 트루아용 등이 합류하였다. 이들을 미술사에서는 바르비종파라고 한다. 바르비종파는 어떤 꼴의 미술사조가 아닌 만큼 화가에 따라 화풍이 다르다. 다만 이들은 작품의 실내 제작을 지양하고 자연 앞에 서서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날씨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자연 풍경을 그렸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 경험을 현장에서 묘사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훗날 인상파의 출현이 가능하였다. 만일 아르비종의 화가들이 자연 앞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모네와 고흐 등 탁월한 예술가는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뛰어넘는 미술 세계인 사실주의를 채택하여 인상주의의 가교가 되었다.
밀레는 자연과 어울려 일하는 농부를 캔버스에 담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세상은 절대주의 시대를 벗어났으나 프랑스 농촌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희망 없는 농촌의 남자들은 도시를 찾아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고, 농촌은 여자와 노약자만 남았다. 이러한 사실을 밀레는 자기 작품에 오롯이 담았다. 쥘 브르통(1827~1906)의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1859)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의 가난의 비참과 고된 노동의 흔적에 비하여 무표정하지만 건강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이는 당시 농촌 모습이 아니다. 일종의 프로파간다이다. 밀레는 현실을 그렸고, 쥘 브르통은 이상을 그렸다. 무엇이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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