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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길
민수기 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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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사에도 돌아보면 소홀히 할 수 없는 아릿한 기억이 묻어 있습니다. 내 유아기의 기억을 더듬습니다.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벌려 감싸도 모자라는 곰솔 나무들이 마을에 있었습니다. 4.3 때 무고한 양민들을 소나무에 묶어놓고 총을 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지만 그 흔적의 내력은 마을 떠난 다음에야 알았습니다. 그 어린 시절 가장 무서운 말은 ‘순사 온다’는 말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5.16 도로에 경찰을 실은 트럭이 나타나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줄행랑을 쳐 숨기에 바빴습니다.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있었는데 물이 귀한 지역이라 물가에 가는 일이 신났고, 주전자로 물을 길어오곤 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뒷동산에 고사리가 삐죽 자랐고, 삐기를 뽑아 속살을 먹었고, 집 뒤에 있는 냇창에는 달콤한 산딸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성실이 몸에 밴 부모님은 열심히 일했지만 빈곤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늘 가난과 핍절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슬퍼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니라 또렷하게 복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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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지난 광야 생활을 회고합니다. 이집트의 라암셋을 떠나 모압 평지에 이르는 40년 여정은 한마디로 고생길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할 정도였을까요?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이어졌고 낙심과 절망이 다반사였습니다. 그 길은 안락을 따르는 구태의연한 길이 아니라 역사에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새 질서를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탐욕을 채우므로 혼자만 득의하고 만족하는 길이 아니라 헌신과 비움을 통하여 모두가 즐거워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극소수의 특권층만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다 행복한 신세계를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길, 넉넉히 잡더라도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걸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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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이집트의 풍요로운 삶을 능가하는 가치에 목마른 자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집트의 눈부신 문명과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당장 실현할 수 없지만 이집트 사회에서는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질서의 세상에 대한 꿈이 광야의 시간을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길 역시 같은 원리의 길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세속적 풍요와 성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한 길을 걸었듯 복음이 제시한 평화의 길은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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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는 전망과 잇닿습니다. 과거는 미래와 연동합니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에 대하여 일본에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일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힘에 의한 인간성 말살이 재현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포기하는 일은 미래를 엉망으로 살자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지와 무식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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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평화에 이르고 민족 화해에 이르기를 빕니다. 오늘 저희가 걷는 이 길이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와 담력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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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391 오 놀라운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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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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