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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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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여덟 개면 충분합니다”
민수기 3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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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에게 분배된 땅에서 자기 지파끼리 모여 살았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큰 집성촌인 셈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살다가 민족적으로 연대할 일이 생기면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지파에게는 각 지파 진영에 흩어져 살도록 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집단으로 모여 살았으나 가나안 정착 후에는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진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성막은 성전으로 특정화되고 고착화되었어도 레위 지파 구성원이 예루살렘에 모여 살지는 않았습니다. 레위지파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투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흩어져 생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레위인의 사명입니다. 이는 야곱이 아들들에게 유언할 때 레위에게는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흩어 버릴 것”(창 49:7)이라는 유언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레위 자손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사명이며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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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유산으로 받는 땅에서 레위 사람이 살 성읍들을 떼어 주라고 명령하여라. 레위 사람에게는 성읍과 함께 그 주변의 목초지도 함께 주어라. 그래야만 그들이 그들의 재산인 가축 떼와 모든 짐승들을 그 목초지에서 기르면서, 그 여러 성읍에서 살게 될 것이다”(35:2~3 새번역). 이스라엘 백성은 분배된 땅에서 농사와 목축 등 건강한 노동을 통하여 삶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인의 생활비는 백성의 십일조와 헌물로 이미 지정되었고, 각 지파가 할애한 목초지에서 가축을 돌보는 일만 허락되었습니다. 레위인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게 아니라 거룩을 위해 일합니다. 성전 봉사와 제의 참여, 그리고 율법 교육은 레위지파가 맡은 사명입니다. 그들의 48개 성읍이 전역에 흩어져 존재하므로 이스라엘은 거룩성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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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 성읍이면 됐습니다. 그중에 여섯은 도피성이었습니다. 더 많아도 의미 없습니다. 레위인의 성읍에서 교회 정체성을 배웁니다. 오늘의 교회는 성공을 위한 교회가 되거나 생존을 위한 목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현상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하여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데 교회 수 줄이기를 논의하지 않습니다. 신학교 입학생이 줄었다고 걱정할 줄이나 알았지 그 적정성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두려워합니다. ‘희소성 때문에라도 교회는 줄여야 한다’고 말하면 미치광이 취급을 합니다. 선교의 자유를 말하면서 선교를 모독합니다. 그것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라는 시장일 뿐입니다. 종교 장사치로 살지 않았는지 부끄럽고 속상합니다. 현실 교회가 가진 문제를 객관화하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는 것이 가당한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는 등대와 같습니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많다고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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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의 부속인으로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흐린 앞세대가 물러나고 이를 정화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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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70 피난처 있으니uhttps://www.youtube.com/watch?v=TEeWxhlO7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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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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