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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원리
로마서 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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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땀과 수고를 소중히 여기고, 고생하였던 추억을 즐거워합니다. 자기 손으로 노력하여 얻은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행위를 등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맨몸으로 육체의 한계를 이기며 올라야 명예로운 일입니다. 이런 게 바로 삶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원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할 때 그 ’믿어서‘가 행위(율법)로서, 구원을 유발하는 원인으로서 구원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의로워짐에 대하여 스스로 자랑할 수 없다’(3:27)고 말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인과율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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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율법)는 삶의 법칙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그것은 구원 얻고 난 다음에 해야 할 과제이자 사명이지 구원을 얻기 위한 전제가 아닙니다. 순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위(율법)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소중한 위치에 있습니다만 율법이 강조되는 시점은 구원 이후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로 구원 얻은 사람은 이제 피 터지는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불의와 부정과 악과 싸워야 합니다. 증오와 범죄와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랑과 선함과 평화를 추구하는 삶에 헌신해야 합니다. 구원은 결승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출발선입니다. 한국교회가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 나라 구현의 출발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통하여 맞본 하나님 나라의 용서와 사랑과 화평과 정의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율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3:31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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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준수하므로 구원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 은혜의 법칙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점을 상기하게 합니다.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4:16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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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논쟁은 시간의 선후를 따지기에 앞서 논리의 문제입니다.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하지, 결혼하고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뭐 그런 경우도 있기도 하겠지만요). 사랑이 먼저이고 삶이 나중입니다. 우리 때는 삶의 보장이 아득해도 사랑하면 무모하게(?) 결혼했습니다. 그런데도 결혼 후 서로 조화하는 삶의 과정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은혜와 율법은 논리와 질서의 문제입니다. 은혜로 구원 얻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구원을 몸으로 살아내는 일(율법)은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버거운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막 같은 불모지를 개간하여 수로를 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것을 관리하고 거두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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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삶이 든든하려면 믿음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불안전한 구원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 나라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따라 살겠습니다. 그 가치와 질서를 몸으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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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https://www.youtube.com/watch?v=IfbovaPfD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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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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