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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성의 원리
로마서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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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교과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와 교탁에 서면 반 대표가 일어나서 “차렷” “경례” 구호를 하면 학생들은 한결같이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군대에서는 모두 상급자에게 경례를 하지 않아도 대표자가 일동에게 차렷 자세를 시킨 후 혼자 경례를 하면 그 자리에 차렷 자세를 취한 모든 이도 함께 경례한 셈이 됩니다. 일명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사회나 국가 등 어떤 공동체든 대표성을 가진 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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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1년여 사이에 국격에 큰 변화가 있음을 감지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세계 47위로 전년도에 비하여 4단계 하락시켰습니다. 지난해에는 2006년 이후 3연임 제한 외에는 빠진 적이 없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낙선하였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안전보장이사회와 경제사회이사회와 함께 유엔 3대 핵심 기구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인 우리나라의 위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2022~2025년 이사국 표결에서 194개 회원국 투표 결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분된 네 자리 이사국에 방글라데시, 몰디브, 베트남, 키르기스스탄이 선출되고 우리나라는 낙선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라의 대표성을 갖는 자들은 핑계와 변명과 남 탓만 합니다. ‘제가 더 잘 챙기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다음에는 잘하겠습니다’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 이들을 ‘잘했다’고 두둔하고 박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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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대표성이 인류를 절망으로 이끌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5:12 새번역). 아담이 인류 대표가 되므로 개인의 범죄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표성의 원리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류가 숙명적 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의 대표성 역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제한속죄론’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제한하는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3세기의 신학자 오리게네스(185?~254?)가 그런 입장을 가졌습니다. 칼 바르트(1886~1968) 역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모든 인류의 죄는 객관적으로 화해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르트는 ‘화해와 구원은 다른 사건’이라며 ‘2차 대전 때 알프스 깊은 산속으로 피난한 이에게 나치스의 항복은 화해의 사건이다. 그러나 그가 구원받으려면 누군가 알프스에 들어가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한다. 나치스의 항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며, 그 소식을 알리려 누군가 알프스를 찾아가는 일은 선교이다.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을 수 있다. 구원은 기쁜 소식을 듣고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며 ‘인간은 화해와 구원 사건 사이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이 교회의 시간이고, 선교의 시간이며, 성령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보편성과 제한성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바울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5:15 새번역)고 하여 어떤 진리가 내재돼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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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대표성이 중요합니다. 저는 주님을 대표하고 하나님 나라를 표현합니다. 건강한 사고와 바른 행동을 갖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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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YIhWberCyeI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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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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