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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은혜 아래
로마서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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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한민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대견할 때가 두엇 있습니다. 하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특히 한겨울 추운 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무심코 의자에 앉았다가 바닥이 난방임을 알았을 때입니다. 아, 내가 이런 나라에 사는구나, 생각하니 스스로 대견했습니다. 며칠 전 외국에 소포를 보낼 것이 있어 우체국에 갔더니 근처에 사는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서 책도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밖은 무더운데 우체국 안은 냉방시설이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아, 내가 사는 나라가 이런 수준이구나, 생각하니 어깨가 절로 으쓱거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우체국 간이 카페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노인들께 돌리도록 알바생에게 부탁하고 우체국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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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무더운 날, 도시는 복사열로 더 뜨겁습니다. 도로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아스팔트 반사열로 푹푹 찝니다. 횡단보도의 파란불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벅차고 짜증스럽습니다. 그런데 횡단보도 옆에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몸을 숨겨 뜨거운 햇살을 잠시라도 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그늘에 몸을 의지하면서 아, 나 같은 서민이 나라의 주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좋은 나라란 경제나 국방 등의 지표상 그래프 높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부로 느껴지도록 해야 합니다. 시민이 자부심을 가질 때,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시민적 권리를 향유 할 때, 나라의 품격은 절로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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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은혜 아래’있다고 강조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그리스도인이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자유의 사람, 평화의 사람이 되었고, 이제 비로소 정의를 추구할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라 살 수 있는 자격이 생겼고, 하나님 나라 질서를 지킬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직도 자신이 죄 아래, 법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립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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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면령이 내려졌는데 그 소식을 듣지 못했거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바로크의 문을 연 화가 카라바조(1571~1610)는 도박과 폭행과 살인 등 기행이 심한 인물이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고, 카라바조는 그의 고향 마을입니다. 그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밀라노의 콜론나 공작이 후원자가 되었고, 21살 때 로마에 입성한 후에는 마리아 델몬트 추기경의 보호를 받으며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마태 연작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수배와 수감과 탈옥이 이어지면서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전전하다가 교종에게 사면을 부탁하기 위하여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던 중 39살의 나이에 객사하고 맙니다. 그런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교종 바오로 5세가 추기경 조카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세의 요청에 못이겨 이미 사면장에 서명을 하였다고 합니다. 진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사면령이 내려졌는데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서글프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인생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거나”(6:16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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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은헤 아래 있는 자로서 순종을 걸어 의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국의 영생을 이 땅에서도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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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36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https://www.youtube.com/watch?v=Q9Ip4tB1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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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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