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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시인선001]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황동규)

[최용우책]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 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동그랗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시 읽기 

바퀴는 잘 굴러가게 만든 것인데 굳이 또 굴리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굴러가야 할 것들이 잘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바퀴는 낡은 생각, 무상한 인생, 세월, 정치, 자연파괴, 정체된 현상, 소외된 사람 등등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독재시대에 굴러가야 할 모든 것들이 멈추어 버린 현상을 상징한다.

안 보이고 보이고, 보이고 안 보인다는 것도 우리 주변의 풀리지 않는 애매한 일들에 대한 모순어법이다. 진술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려는 의도이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잘 풀려 굴러갔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느낄 수 있다.

황동규 시인은 황순원 소설가의 아들이다. 생전 황순원 선생과 박목월 시인은 각별하게 지냈는데 그때 아들을 낳으면 서로 이름을 동규로 짓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목월 시인의 아들도 박동규이다.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도 굴러다닌다. -최용우

 

목차

1. 1975-1978

연등/서로 베기/바다로 가는 자전거들/지붕에 오르기/장마 때 참새 되기/불 끈 기차/여름 이사/여행/일기/지하실/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말하는 광대/꿈, 견디기 힘든/우리 죽어서 깨어날 때/편지 2/맨홀/정원수/초가을 변두리에서/모래내/

 

2. 1976

눈 내리는 포구/사랑의 뿌리/저 구름/생략할 때는/어젯밤 말 한 마리/오늘은 아무것도/뒤돌아보지 마라/서서 잠드는 아이들/그대 뒤에 서면/맨발로 풀 위를/우리는 수상한 아이들

 

3. 1972-1975

성긴 눈/계엄령 속의 눈/초가/낙백한 친구와 잠을 자며/아이들 놀이/새들/편지 1/그 나라의 왕/바닷새들/세 줌의 흙/수화/정감록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조그만 사랑 노래/더 조그만 사랑 노래/더욱더 조그만 사랑 노래/김수영 무덤/돌을 주제로 한 다섯 번의 흔들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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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