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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로마서 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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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 존재합니다(3:20). 율법이 없다면 죄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율법의 요구가 넘사벽이어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율법을 잘 지켜 구원에 이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3:21), 곧 은혜(선물, 복음)에 이르기 위한 길로서 율법은 존재합니다. 율법 앞에 직면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의 의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는 의미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율법은 은혜의 방편이자 선한 도구입니다. 자물쇠는 열기 위해 존재하고, 열쇠는 잠그기 위해 필요하듯, 율법은 구원의 희망으로서 은총을 소망하게 하고, 은혜는 율법의 요구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신령하다’(7:14)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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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1835~1910)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 의하면 영국 왕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튜더와 런던의 뒷골목 술주정뱅이의 아들 톰 캔디가 태어났습니다. 같은 날 태어났지만 두 아이의 신분은 왕자와 거지로서 전혀 다른 운명입니다. 톰은 아버지로부터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구걸을 일삼고 자랍니다. 그런 중에도 어머니와 쌍둥이 누이가 톰을 챙겨주고, 다른 거지 소년들과 함께 앤드류 신부에게 라틴어를 배우기도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왕궁 주변에 갔다가 경비병에게 야단을 맞게 되는데 그 모습을 에드워드 왕자가 보았습니다. 왕자는 경비병에게 ‘내 아버지의 백성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하고 톰을 안쓰럽게 여겨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동갑내기 두 소년은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소년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왕자는 톰의 옷을 입은 체 톰에게 무례하게 군 경비병을 혼내주러 갔다가 도리어 경비병에게 거지로 몰려 궁 밖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한편 예절과 전통에 무지한 톰은 왕자의 옷을 입고 왕자 행세를 하지만 왕궁에서는 ‘왕자가 미쳤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뒤바뀐 소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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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는 <로마서>의 문학 버전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7:18). 바울의 이 고백이야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현주소입니다. 영적선(靈的善)에 대한 의지와 꿈은 있으나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는 은총으로 일어났지만, 수준의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톰이 왕궁에서 왕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지만,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현실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분은 은총으로 변화하지만, 수준은 율법으로 개선됩니다. 신분과 수준의 차이가 큰 것은 낙심할 일이 아니라 분발할 일입니다. 그 차이를 줄이는 일, 바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통하여 부단한 훈련을 받아 하나님 나라 시민의 당당함을 갖춥니다. 신분과 수준의 차이를 줄이는 일, 바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통하여 부단한 훈련을 받아 하나님 나라 시민의 당당함을 갖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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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신분은 변화되었지만 옛 습성은 그대로여서 죄와 악에 허덕이고 있는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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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95 큰 죄에 빠진 나를 https://www.youtube.com/watch?v=s78Vc7e-xT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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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왕자와 거지> 초판 89쪽의 일러스트입니다
2023. 6. 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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