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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로마서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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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인문학모임에서 미술과 역사를 주제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대세인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인문학에 담긴 인간 정신이 우리 시대에 절실하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움 때문에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과 진실이 있습니다. 서양 미술과 동양 미술의 차이 가운데 하나가 역사화(History Painting)에 대한 인식입니다. 아쉽게도 동양에서는 역사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특히 르네상스 이후 신고전주의가 발흥한 프랑스에서 미술의 장르를 역사화, 초상화, 동물화, 풍경화, 정물화 순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가장 낮고, 생명력이 강한 인간의 활동인 역사화를 가장 높은 위치에 두었습니다. 역사화를 ‘스토리 페인팅’, ‘내러티브 페인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교훈과 의미와 정신을 담고 있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화는 시공간의 사실뿐만 아니라 성경은 물론 신화도 포함하여 보편의 가치와 모범과 진실을 추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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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기욤 기용 레티에르(1760~1832)의 <아들을 사형에 처하는 브루투스>(1811)는 공과 사의 엄격함을 보여줍니다. 브루투스(BC 85~BC 42)는 고대 로마의 정치인으로 카이사르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가 종신 독재관에 오르려 하자 암살에 가담하였습니다. 뼛속까지 공화주의자인 브루투스는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공화정 수립에 힘을 보탭니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두 아들이 반란을 꾸미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재판을 브루투스가 맡았습니다. 브루투스는 단호하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림에서 보듯 백성들이 도리어 선처를 호소하지만 브루투스의 신념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비드(1748~1825)도 이 장면을 <아들의 시신을 브루투스에게 가져오다>(1789)의 제목으로 그렸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가족을 잃은 어머니와 누이의 슬픔이 처절합니다. 오른쪽 그늘에 있는 브루투스 역시 비통한 심정으로 앉아있지만 차마 가족들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결단한 그의 고독이 화면 밖에까지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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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원칙주의자의 길이란 죽음 그 너머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이 그렇습니다. 남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원칙을 강요하면서도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이들이 민주주의를 모욕하고 있는 세상이 보기 민망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승리와 성공에 둔 아둔패기의 시대가 속히 지나기를 바랍니다. 삶을 경축하고 상대를 축복하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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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각축장 같은 세상을 변화시켜 즐거운 놀이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확신 위에 서 있는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8:1 새번역). 이 고백이 믿음과 삶의 밑절미입니다. 원칙이란 고집이 아니라 솔선수범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여셨고, 우리에게 그 길을 가라 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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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떨쳐내고 서로의 유익과 평화를 이루는 공생의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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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레티에르 <아들을 사형에 처하는 브루투스> 1811, 캔버스에 유채, 440×783cm, 루브르박물관, 파리
그림 2:
자크 루이스 다비드 <아들의 시신을 브루투스에게 가져오다> 1789, 캔버스에 유채, 323×422cm, 루브르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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