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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정답과 해답
로마서 9: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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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교육과정에서 정답 맞추기에 익숙해진 탓인지 나는 모든 문제에는 정답과 오답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3의 답은 있지도 않고, 있다고 하여도 오답에 불과하다고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고, 척척 정답을 찾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정답은 언제나 옳고 오답은 늘 그르다는 이분법이 세뇌되어 강화된 시점도 이즈음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 세상을 살아보니 정답과 오답으로 세상을 가르기에 세상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게다가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정답 같은 오답도 있고, 오답 같았는데 정답보다 더 옳은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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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훔친 일은 죄지만 그렇다고 빵을 훔친 장발장에게 징역 19년 형을 선고한 판사나 그보다 높은 형량을 주문한 자베르 검사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남의 돈을 훔치는 일은 죄지만 버스 기사가 잔돈 400원을 두 번에 걸쳐 커피값으로 사용한 일을 횡령으로 보고 해임한 일은 지나칩니다. 그 판사는 85만 원 향응을 받고 유흥업소 성매매 의혹이 있는 검사의 면직에 대해서는 ‘가혹하다’며 징계 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승승장구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감이 끊겨 열흘을 굶은 일용직 건설 노동자가 달걀 18개를 훔쳤습니다. 돈으로 하면 5,000원 어치입니다. 남자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였습니다. 이 죄에 대하여 검사는 18개월 징역형을 구형하였고 판사는 징역 12개월을 선고하였습니다. 다행히 2심에서는 징역 3개월로 감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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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무겁고 가혹하게 하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게 정답일까요? 오답은 아닐까요? 엄벌주의는 도리어 재범률이 높고 죄를 극악하게 만들고 죄를 보편화할 수 있습니다. 요즘들어 형사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라지고 부패한 검찰과 사명을 져버린 언론에 의하여 시계를 중세로 돌리는 일이 아주 흔해졌습니다. 모욕감을 주어 인격 살인에 이르게 합니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흡사한 일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명사회의 수치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 부끄러움을 외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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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10:4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정답이자 인생의 해답입니다.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도 해답입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으나”(10:3) 초대교회의 시작은 유대인 중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에게도 해답입니다.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9:30).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는 해답이십니다. 이해가 부딪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이익이 상충하는 외교 관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해답입니다. 정전 70년이 되는 이 즈음 한반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교회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이유도 그 해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교회는 알면서 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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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고, 그에게 해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여전한 죄성 때문에 머뭇거릴 때가 많습니다. 불의와 무지만 죄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부끄러움도 큽니다. 용서를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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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63 신자되기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spZA5a6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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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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