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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차별
로마서 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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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 이 나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은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맞는 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말을 들은 장관들이 군주시대의 상명하복하는 아둔패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 헌법은 임시헌법에서부터 약자 배려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한 노동자가 열흘 굶고 견딜 수 없어서 달걀 18개를 훔쳤습니다. 검사는 재판에서 18개월 징역형을 구형하였습니다. 이 검사의 행위가 ‘정의로운 고통’입니까? 아니면 ‘깡패의 폭력’입니까?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달걀값 5,000원에 벌금 5,000원, 그리고 24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하면 정의가 무너지기라도 하나요?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일감이 급감한 현실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으니 해당 지자체나 복지단체를 통하여 재취업이나 직업훈련을 주선하는 일을 하면 큰일이라도 난답디까. 정의와 폭력을 혼동하는 깡패의 세상이 몰고 올 세상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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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양극단으로 보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내 편과 네 편만 존재합니다. 나는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는 논리에서 중간 지대는 사라지고 회색지대만 남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제3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1948년 말 중국 요녕성 무순시 신빈에서 과거 일제 강점기 때 항일과 독립을 위해 일하던 한인 공동체를 재건하다가 중국 공산당에 붙잡힌 신철(본명 이동원, 1924~2008)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옛 경성제국대학 수학과 출신의 수재로 미군정에서 일하다가 대구 10.1 사건(1946)에 연류되자 그를 아끼던 당시 국무총리 이범석(1900~1972)이 소개신을 써주어 중국 남경의 국민당 정부에 갔습니다. 국공내전(國共內戰) 중이던 국민당 정부는 그를 동북지역에 보냈다가 사달이 난 것입니다. 그가 전범 신분으로 있던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명분으로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이때 신철은 반전운동을 벌이다가 반혁명범의 죄가 늘어 32년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없던 초유의 대규모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조각가 케테 콜비츠(1867~1945)는 반전운동에 뛰어들어 자신의 예술혼을 인류사회 부조리의 극치인 전쟁을 반대를 위해 불살랐습니다. 그녀의 영향력은 루쉰(1881~1936)의 판화운동과 한국의 민중미술에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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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사를 흑백논리로 보는 이가 지도자가 되면 공동체는 반드시 위기에 처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신냉전 구도로 세계 질서가 개편되는 요즈음 우리나라는 안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택과 경제를 위해서 해야 하는 선택이 충돌합니다. 어제의 적이 언제나 적일 수 없고, 오늘의 벗이 내일도 변함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경우의 수를 살펴야 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무기로 난국을 헤쳐가야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일본과도 미래를 함께할 이웃 나라로서 당당하게 과거 역사의 아픔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답을 요구해야 하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보편주의에 터하여 반대하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무지한 지도자는 ‘모 아니면 도’ 식의 행동밖에 할 줄 모릅니다. 역사의 책임을 방기하고 시제를 퇴행시키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기므로 악을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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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10: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인생은 없습니다. 선교란 그 사실을 세상에 전하는 행위이고 목회란 그 진실을 실천하는 일이며 교회란 이를 진리로 믿는 이들의 모임이고, 신학이란 그 사실을 학문화하는 작업입니다. 구원은 유대인도 가능하고, 헬라인도 가능합니다. 인생은 누가 되었든 행복해야 합니다.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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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모두 행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님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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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https://www.youtube.com/watch?v=j5BHc2fASfw
그림 : 케테 콜피츠, <추모 1919. 1. 15>, 1920, 판화, 35.5×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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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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