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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전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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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아담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영이 죽고 타락된 상태다. 이런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해도 타락이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인정이 안 된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게 없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만 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생명과 사망을 나누지 못해서 자기는 생명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망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생명적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온전을 목적으로 하면 틀림이 없다. 자기가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말씀을 듣고 자기를 쳐다보고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과, 말씀을 듣고 자기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로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믿는 우리는 존재적으로는 다 천국에 들어가지만 신앙 인격 면으로는 말씀대로 만들어진 요소는 천국에 들어가지만 아무리 옳은 말을 듣더라도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요소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세상은 전부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깨달을 재료다. 그러니 절대로 사건이나 사람을 잡고 싸우지 말아라. 어린아이는 빨리 자라는 아이가 있고 더디게 자라는 아이가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먼저 깨닫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깨닫는 사람이 있고, 덜 깨닫는 사람이 있다. 이게 인간인데 자기를 주님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그 차이를 못 느낀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거다.
세상의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은 상당히 교만하다. 이것은 세상의 지식으로는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서 성경을 많이 알면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말만 하고 만들어진 게 없다면 이건 교만으로 산 거다.
믿음과 행동을 놓고 ‘어느 게 진짜 믿음이냐?’고 하면서 입씨름을 잘하는데, 야고보서를 말하는 사람은 잘 믿는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설령 성경 문자대로 행동을 할지라도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행동은 아가페 사랑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무엇을 하건 아가페로 된 것이면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되는 것이라서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세상사람들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인격적인 면에서 정화된 게 없다. 혼탁이요 혼란스럽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굳어진 주관성에다가 감정적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원수가 되었다 친구가 되었다 한다. 이런 인간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창조의 근본 목적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이방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하나님의 것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 중복적으로 거듭나고, 중복적으로 자꾸 고쳐나가야 하는데 이게 없이 믿기 전의 마음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음녀요 바벨론이다. 이런 사람이 모인 교회는 구별 분별이 없어서 각자 모여서 자기 주관대로 재간을 써먹기 때문에 사람은 많이 모이지만 타락된 교회다. 우리는 아무리 예수를 못 믿더라도 이것을 아는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환난 때 옳은 기도를 할 수 있다. 시:에 다윗의 기도가 이런 게 많다. 우리의 기도도 이래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마음의 방향이 동쪽을 향한 건지, 서쪽을 향한 건지, 남쪽을 행한 건지, 북쪽을 향한 건지, 남극에 있는 건지, 북극에 있는 건지, 찬 건지, 뜨거운 건지 믿는 성질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세상만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내 속에 세상이 들어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빨리 감지가 되지 않는다. 자기 주위에서 사건과 상황이 계속 돌아가는 것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는 거다. 자꾸 사건만 보려고 하고, 남만 보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말씀에 어두운 거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건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은 없이 인간 제멋대로 산다면 짐승보다 못한 거다. 이것을 깨달으라고 성경에 용이 나오는 거다. 용은 실물이 없다. 하나님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용이 머리 일곱과 열 뿔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과 목적이 허무하고 허황한 것을 말한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용으로 표현한 거다. 용 비슷한 게 뱀이다. 이게 다 인간창조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허황한 정신과 사상을 말하는 거다.
진리본질에서 이탈이 되면 이질인데, 오늘날 교회가 이질적인 사상이 노골화 되어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진리본질로 믿는 사람과는 인격의 주격이 다르다. 말로는 ‘예수, 예수’하지만 세상정신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양을 잡아먹듯이 진리의 성도들을 노략질한다. 이건 강도요 도둑이다. 운동의 성질로 보면 주님과 대적자다.
세상사람들을 구분하면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두 부류로 나뉜다. 그다음에 믿는 사람 중에는 ‘본질로 믿느냐, 이질로 믿느냐?’ 둘로 나뉜다. 그리고 진리본질로 믿는다고 할 때 ‘하나님의 온전으로 많이 만들어졌느냐, 덜 만들어졌느냐?’가 있다. 만들어진 것만 최종적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궁극적인 천국의 결과를 미리 당겨놓고 현재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게 이룰구원이고 궁극적 신앙이다.
믿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더라도 자기가 신앙적으로 부활성의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님이 살아나셨을 때 다른 사람들도 살아났는데, 이것을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현실에서 부활성의 신앙으로 만들어진 것은 나중에 부활이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수 믿은 지 수년, 수십 년이 되었다면 신앙성이 죽음에서 살아난 게 있느냐?
교회의 메시지는 세상창조를 들고 말을 하든, 중세기를 들고 말을 하든, 말세를 들고 말을 하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정신이 나와야 한다. 또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게 되어져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실력이 만들어져서 그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 어떤 말을 해도 자타의 구원이 되는 언행심사가 나오게 된다. 자기 가정에 할머니도 있고, 어른도 있고, 청년도 있고, 아이도 있는 것은 각층의 사람을 겪으면서 영능의 실력을 키우라는 거다. 혼자 살면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이 되거나 생각이 좁을 수 있다.
주님은 33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매사에 사는 것으로 사셨고, 죽지 않을 것으로 사셨고, 죽은 것도 살리는 삶을 사셨는데 우리가 하루하루 살면서 죄로 인해 죽어 간다면 창조의 목적에 놓고 볼 때 헛사는 거다. 우리는 육신은 늙어가더라도 생각은 사는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몸과 함께 정신도 죽어 간다면 이것은 세상을 그만큼 의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들어갈수록 천국 쪽으로 가까이 가야 한다. 이러면 기쁘고 감사가 나온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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