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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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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레:에서 문둥병자의 종류 중에 피부의 껍데기가 벗겨지면서 붉은 것은 문둥병이고, 딱지가 떨어지면서 새 살이 돋아나면 하얀 피부가 되는데, 이것은 문둥병이 낫는 거라고 했다. 피부병이 자꾸 피부 안으로 들어가면 딱지가 잘 생기지 않는다.
문둥병이 전신에 퍼지면 정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이 전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주님께 나아와 속죄함을 받고 깨끗해질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이 전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사망을 이길 수 있는 거다.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지나가는 말이라고 해도 신령천국에서 영원히 효력이 있는 말씀이라서 헛말이 없다.
‘안식일은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원 궁극적인 구원에 관한 말씀이라는 거다. ‘안식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은 자학하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해서 자기의 죄를, 즉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관계성에서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 대사관계를 하나님 앞에 바로 놓으라는 말씀이다. 이걸 바로 놓는 게 회개다. 회개를 하려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의미에서 괴롭게 하라는 거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기쁨이 온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을 날짜적인 개념으로 따진다. 날짜를 지키는 게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게 안식일을 지킨 거다.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갔으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야지 집 안 구경만 하고 나온다면 그 집에 들어간 의미가 없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날짜개념이 아니라 이룰구원의 이치를 알게 하려니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그 안의 정신을 말해주는 거다. 이것을 교훈 면으로 보면 안식일의 주인을 만나야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게 동시성으로 된다. 한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면 그다음에 부활을 알게 된다는 거다. 이렇게 깨달으라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있는 거다.
인간이 볼 때는 몇천 년의 기간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이것을 순간적으로 동시성으로 보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전에 지었던 우주만물이 지금도 그대로 돌아가고 있고, 그때 명령했던 말씀이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창세 때의 아담과 하와가 되어서 현실에서 생명과를 먹어야 한다. 우리는 창:부터 계:까지 한 눈으로 봐야 한다. 이게 영의 눈이다. 날짜적인 개념이나 역사적인 개념으로 따지면 이방 불신적, 학적인 지식이 기준이 된다.
◆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살았는데, 이게 에덴동산 교회다. 이곳에 두 나무가 있었는데, 왜 나무를 비유로 사용했을까? 나무는 자꾸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선악과는 열매는 없고 퍼지기만 한다. 즉 구원개념의 열매가 없다. 이 선악과 속에는 마귀의 역사, 사단과 뱀의 역사, 독사의 역사, 귀신의 역사가 있다. 이런 역사는 구원과 비교하면 허무에 속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허무한 거다. 삶의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에서 허무다. 그런데 이 사상이 창:에서부터 마지막 날까지 교회로 통해 내려오고 커지다 보니 조직을 갖게 되었는데, 이게 용이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된 사상이 커지고 조직을 갖는 게 용인데, 이 용은 실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고 나온 타락적 개념으로 뭉쳐지고 커져서 세상 소원 목적으로 조직을 이루어서 세상에 속한 일을 하는 게 용이다. 선악과를 먹은 사상으로 세상의 부요와 존귀 영광과 행복을 만들자고 하는 게 개개인 속에 들어있는데 이것이 커져서 바벨론, 메대, 파사로 커진 것을 단:에서 보여준다. 이게 다 선악과를 먹은 사상에서 나온 거다.
선악과를 먹고 나온 주격적 사상은 허무한 거고 구원이 아닌데, 이 주격적인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가 이 주격으로 나가는 게 음녀교회다. ‘교회’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를 말하는데, 우리를 당신의 피로 사셨으니 우리는 주님의 몸이요, 따라서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을 안고 세상에 등을 기대고 살면 음녀다.
교회가 선악과의 사상으로 조직화 되어서 커지면 이 안에는 왕도 있고, 장군도 있고 백성도 있는데, 이 조직 속에 들어있는 직분은 주님께 욕을 돌리는 직분들이다. 규모가 큰 교회가 다 이렇다는 게 아니라 선악과를 먹은 사상으로 조직화 되었다면 100% 용이다.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는 일곱 머리와 열 뿔, 즉 세상의 권세와 종교적 권세를 가지고 교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게 마지막 시대의 교회 현상이다.
이런 교회는 오만 잡귀신의 놀이터다. 오만 잡된 영들의 집이라서 개구리가 와서 울고 올빼미가 와서 운다. 교회가 부정한 것으로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성경이 이런 짐승을 들고 말씀하는 거다. 사람의 속이 짐승 같다고 하는 것은 자연적 본능적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어야 하는데 음녀교회라고 하는 것은 할례받지 못하고, 중생 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귀신들의 서식지요 집단이라는 거다. 이런 조직 속에서 많은 왕이, 즉 목사들이나 학박사들이 가르치고 배우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이런 조직을 만들어서 거짓 말씀을 팔아먹는 게 말세교회다. 말세가 되면 이들의 세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증서를, 허가를, 표를 받지 않으면 장사를(목회를) 못한다.
우리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지만 마지막 시대의 거짓 종들은 외부, 외모, 외형, 색깔, 덩어리 큰 것을 기준으로 ‘신앙이 있네. 없네’ 한다. 교회는 이런 것을 기준으로 따지면 안 된다. 천국에 갈 사람은 피부가 하얗고, 지옥에 갈 사람은 피부가 검으냐? 그렇지 않은데 정치계도 경제계도 사람의 외모 외형을 기준으로 사람을 따진다. 교회는 충성봉사가 기준이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누구를 닮아가느냐?’ 하는 정신을 보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상황을 만들어서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신앙의 차원이 높이 올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신앙의 차원이 뚝 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을 알게 하려고 모든 크고 작은 사건과 존재를 동원하신다.
구약시대의 에덴동산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어느 쪽 사람이냐?’ 하는 지식을 갖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눈, 주님의 눈, 성령의 눈을 가지고 성경을 깨달아 나가면서 동시적으로 자기를 깨닫고 고쳐가야 한다. 성경의 역사나 따지고 시대나 따지는 것은 믿음 없는 소리다.
성경은 시대적인 진보 발전이나 과학의 발전을 동원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기록된 거다. 예수를 믿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없으면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게 구원의 길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길로 가야지 멸망의 길, 파괴적인 심판의 길로 가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말씀이 아니면, 구원의 말이 아니면 들을 필요가 없다. 이건 심판이요, 믿고도 욕먹고, 충성봉사를 하고도 불바다로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를 알아도 옳은 것을 확고부동하게 알아야 한다. 나의 이룰구원이 중요한 것이니 이룰구원이 아닌 말은 들어서도 안 되고, 믿어서도 안 되고, 이런 곳에서 충성봉사를 해도 안 된다. 헛살고 헛믿고 가면 안 된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영원한 것을 주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자꾸 은혜를 주신다. 세상 것을 주면 고맙고 감사하게 받겠지만 자기에게 세상 것이 얼마나 있어서 계속 퍼주겠느냐?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영원한 것을 주고,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을 받아야 한다. 헛된 것을 주고받으면 자기 일생은 헛 인생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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