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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성공보다 멋진 실패
로마서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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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망아지는 말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길러야 말다운 말이 되고, 사람은 서울에서 공부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에 ‘서울’에 대한 속담이 많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거나 ‘서울서 뺨 맞고 송도서 주먹질한다’, ‘남이 서울 간다니 저도 따라 나선다’,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서울 가 본 사람보다 서울을 더 잘 안다’, ‘서울은 눈뜨고 코 베는 곳’, ‘서울서 김 서방 찾기’, ‘서울깍쟁이’ 등…. 그런데 대개 서울에 대한 속담이 긍정의 의미보다는 빗대어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사 ‘서울’은 한 나라의 정부가 있는 곳으로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입니다. 성공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서울을 가고 싶어 합니다. 서울을 가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바울 시대로 말하자면 당연히 로마입니다. 로마는 세상 중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로마를 그리워하였고 로마를 좋아하였습니다. 로마인과 로마문화와 로마 생각을 흠모하였습니다. 권력 지향형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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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도 로마를 가고 싶어했습니다(1:11, 15:22). 로마는 제국의 중심이었고 당시는 팍스 로마나(BC 27~ AD 180) 시대였으므로 로마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를 가고자 하는 이유는 달랐습니다. “내가 스페인으로 갈 때에, 지나가는 길에 여러분을 만나 보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여러분과 먼저 기쁨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의 후원을 얻어, 그곳으로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15:23b~24 새번역). 아,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가 아니라 당시 세계의 땅끝 이베리아반도, 곧 스페인이었습니다. 세계 제일의 도시, 제국의 중심, 권력과 물질과 명예와 영광의 도시 로마가 아니라 세상의 끄트머리인 변방 스페인을 가고자 함입니다. 영광과 명예를 누리고자 함이 아니라 섬김과 낮아짐이 바울의 목표였습니다. 단지 로마는 스페인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로마교회에 스페인을 섬기기 위한 헌신의 기회를 주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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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목자’ 문동환(1921~2019) 목사님을 생전에 찾아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조국에 들어왔을 때 여기저기서 오라는 곳은 많았으나 목사님과 사모님은 예수님이라면 어디를 가실까를 기도하다가 미군을 상대로 삶을 이어가는 기지촌 여성을 위하여 의정부와 동두천에 ‘두레방’을 열었습니다. ‘양공주’로 낙인찍힌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이웃이며, 가부장적 군사문화의 피해자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라’며 그들을 보듬었습니다. 내가 찾아뵈었을 때 문혜림(1930~2022) 사모님은 이미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손 뜨개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노 목사님 부부에게서 역(逆)서울 반(反)로마 정신의 청년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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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울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울만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도시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도시에서만 살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상도 가야 합니다. 땅끝도 가야 합니다. 왜 잘난 목사들은 다 도시에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끝을 향하는 바울처럼 제발 바울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다들 성공만 하려고 할까요? 성공보다 더 멋진 실패의 길이 십자가 길 아니던가요? 아이스 와인과 루왁 커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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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생각으로 살지는 않았지만 본이 되는 사역과 삶을 일구지는 못했습니다. 목회 말년이 되니 그저 부끄럽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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