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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소감
로마서 16: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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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를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점에서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설명하는 바울의 선명한 논리와 뛰어난 가르침입니다. 로마서의 진가를 확인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와 루터(1483~1546)를 거치면서 로마서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중추 교훈이 되었습니다. 로마서는 곁길로 가는 교회를 제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지 않았거나 기록하였는데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여 사도로 삼으심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다른 하나는 일면식도 없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자로서 우리는 하나라고 언급하며 로마를 방문하여 나눔과 사귐에 이르기를 원하고(1:6~15), 나아가 땅끝 스페인에 이르는 과정에 로마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협력을 당부하는(15:23~24) 당당한 태도입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이미 공교회 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쓰는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이 이미 그리스도교의 일원으로서 모든 교회로 부터 문안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16:16).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로마서에 기록된 당시 교회 상황이 대견하고 부럽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런 모습을 실현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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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를 읽으며 오늘 이 땅의 교회를 돌아봅니다. 오늘의 교회에 탁월한 선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분위기가 선생을 존중하거나 그 가르침을 귀히 여기기보다 편을 가르고 상대에 대하여 험담을 일삼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교회는 경쟁과 독주를 일삼느라 공교회로서 하나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좋은 목을 차지하여 수지를 맞추려는 장사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미자립교회의 아픈 현실은 못 본 체합니다. 현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업 일선에 나서야 하는 목회자의 고뇌에 찬 결심에 담긴 선교적 가능성은 아예 외면하고 폄훼하기를 함부로 합니다. 교회는 공존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독자생존 하는 경쟁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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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도 복음을 거슬러 분열을 일으키고 올무를 놓는 사람이 있어 바울은 그들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줍니다(16:17).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16:18 새번역). 바울의 이 말은 마치 오늘 우리 형편을 알고 하는 교훈처럼 들립니다. 오늘, 바르게 믿는다고 자처하는 자들일수록(특히 개혁주의를 들먹이는 이들) 얕은 신학으로 함부로 남을 정죄하고, 그것이 바른 신앙의 지표인 것처럼 건방을 떱니다. 책 한 권 읽고 절대 진리에 득도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꼴이 가관입니다. 다른 생각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기 옳음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이들도 문제지만 맹목적으로 그런 이들을 옹호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걱정입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이니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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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16:20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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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를 묵상하며 믿음의 좋은 벗들을 만나 서로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을 보는 눈으로 먼저 자신을 보며 겸손히 섬기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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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07장 귀하신 주님 계신 곳 https://www.youtube.com/watch?v=nKd1XDzEdQQ
렘브란트, <사도 바울>, 1657, 캔버스에 유체, 131.5×104.4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DC
2023 6. 30 금 #로마서읽기 #나비생각 #로마서소감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Wne4wJiHc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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