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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슬프도소이다”
예레미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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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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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일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재미’입니다. 세상 일에는, 의미는 있는데 재미가 없거나, 재미는 있는데 의미가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의미는 있는데 재미가 없으면 모이기가 어렵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곳에는 사람들이 아예 모이지 않습니다. 의미는 없는데 재미가 있으면 호기심으로 모이기 마련이고 그런 데는 대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모임입니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이 흔치는 않지만 그런 경우의 일이나 사람을 만나면 참 다행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직업이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기 마련입니다. 고생은 하더라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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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일도 그렇습니다. 복음과 관련한 일은 당연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의미를 따지는 일이라면 이 일보다 귀하고 중요한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교도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현실에서는 수고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피 터지게 얻어맞고 한 대 더 맞는(?) 일이 다반사여도 다음날 또 얻어맞으러 일어서는 용기가 하나님 나라의 전사에게는 있습니다.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은 경험한 자만 아는 비밀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10:0으로 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더라도 재미있습니다. 매사에 성공하고 승리해야만 즐거운 게 아닙니다. 늑신하게 얻어맞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자신이 세상의 가치와 질서를 역행하고 있음에 대한 증명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늘 성공 가도를 달린다면 자신의 정신 구조가 세속화한때문은 아닌지 냉철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자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돈은 벌 수 있지만 주님으로 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명예에 목을 맬 필요도 없습니다. 영예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이란 그렇습니다.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어서 하는 일이고, 그래서 성패를 떠나 재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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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가문의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의당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반응이 영 다릅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 부름에 임하는 예레미야의 반응이 왜 이럴까요? 아, 그렇습니다. 조국의 절망을 예언하고 백성의 멸망을 선포해야 하는 일이고 보니 하나님의 부름이 반가울 리 없습니다. 선지자란 딱하고 가련한 인생입니다. 예레미야는 슬픈 선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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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BC 627)에 부름을 받아 여호아하, 여호야킴,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이르는 동안 예언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때는 아시리아가 쇠퇴하고 바벨론이 부흥하는 서아시아 정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와중에 유다의 피할 길은 없었습니다.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를 줄타기하며 살 길을 모색하였지만 결국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들므로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BC 586) 유다의 많은 백성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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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희망 없음의 이 시대가 그때 유다와 너무 닮았습니다.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오늘 저는 예레미야의 영성을 갈구합니다. 이 땅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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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https://www.youtube.com/watch?v=yaXwPLiNc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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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FLA :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듣고 한탄하는 예레미야>, 1630, 58×46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2023. 7. 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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