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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내

창작동화 한희철............... 조회 수 56 추천 수 0 2023.07.07 08: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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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내
바크 대신 시골에서 올라온 누렁이는 정말이지 바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생긴 것부터 험상궂게 생겨먹어 보기만 해도 겁부터 덜컹 나게 했던 바크였습니다.
덩치는 얼마나 컸는지 바크가 한번 짖어대기 시작하면 온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였고, 그렇게 짖어댈 때면 목에 바크를 묶어 놓은 굵은 쇠줄도 소용이 없어 새끼줄처럼 뚝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성질이 사나운 바크는 아무나 보면 달려들 듯 짖어댔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낯선 사람을 향해서나 짖으면 좋을 텐데 바크는 사람을 가리는 법도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서도 바크의 심술은 늘 발동을 했으니까요.
길을 지나가다 말고 천둥소리처럼 짖어대는 바크를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기절을 할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곤했습니다.
바크는 은근히 그러길 좋아했고,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바크는 시골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바크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적지가 않았습니다.
그 사나운 개가 줄이라도 끊고 대문 밖으로 나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 댁에서 사나운 개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산간 밭에 심은 고구마가 툭툭 고랑을 터뜨리며 탐스럽게 익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산에서 멧돼지들이 내려왔습니다.
가족 소풍을 나온 듯 새끼들을 데리고 내려온 멧돼지들은 온통 고구마 밭을 들쑤시고 다니며 밭을 다 망가뜨렸습니다.
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아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망가진 밭과 논을 멀거니 쳐다볼 뿐 할머니로선 별다른 방책이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도 당해낼 수 없는 멧돼지를 할머니가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다간 밭이 문제가 아니라 집밖에도 안심하고 나다닐 수 없게 될 것 같다며, 할머니는 사나운 개를 찾았던 것입니다.
바로 바크와 같은 개를 말이지요.
바크와 누렁이가 바뀐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누렁이는 생긴 것부터가 순하고 얌전한데다가 마음씨까지 얼굴을 닮아 누구한테 한 번 짖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와도 마치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습니다.
전에 있던 바크처럼 사나운 구석은 어디에도 없어 집에 개가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온지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누렁이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바크도 부린 적이 없는 엉뚱한 말썽을 말이지요.
무슨 심보에선지 누렁이는 툭하면 화분을 쓰러뜨리고 화분 속에 있는 흙들을 밖으로 꺼내 바닥에 깔고선 그 위에 주저앉아 있곤 했습니다.
더러는 화분을 엎다가 화분을 깨기도 해 호되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화분 속의 흙을 파내 그 위에 앉아 있는 버릇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누렁이 때문에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은 흙으로 지저분해지가 일쑤였습니다.
결국 마당 한구석 감나무 밑으로 쫓겨난 뒤에도 누렁이의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감나무 둘레 돌 틈 사이의 흙을 긁어 파냈고, 파낸 흙을 이불처럼 펼쳐 놓은 다음 그 위에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누렁이가 왜 그러는지, 왜 그렇게 흙을 고집하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며 밴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해 그러겠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누렁이의 버릇은 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식구들은 마침내 누렁이의 버릇에 대해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가 잠깐 서울에 올라 오셨습니다.
하늘이 동생 바다가 세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십니다.
머리카락은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되었고, 걸음은 불편하십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당신의 막내 손자의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할머니가 오시면 제일 신이 나는 것은 하늘이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을 읽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를 보는 것과도 다릅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까울 만큼,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찾아오는 것이 아까울 만큼 정말 푹 빠져들게 하는 재미난 얘기들입니다.
신기하게도 할머니 얘기엔 끝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과 손 가득한 주름 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가 오신 그날도 하늘이는 할머니랑 같이 잠을 잤습니다.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온 누렁이가 잘 지내냐며 누렁이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누렁이 이야기에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하늘이가 누렁이의 버릇에 대해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흙을 꺼내 깔고 앉는, 그 못 말리는 장난기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마 누렁이가 땅내가 맡고 싶어서 그런가 보구나.”
“무엇을 맡고 싶어서 그런다고요?”
“응, 땅내.”
“땅내가 뭐예요, 할머니?”
“땅내란 말 그대로 땅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는 거야. 시골에서 늘 흙과 함께 지내던 누렁이가 서울로 왔으니 얼마나 땅내가 그리울꼬.”
땅에서 나는 냄새가 있다니, 하늘이가 신기한 마음으로 냄새를 맡아봅니다.
“할머니, 어느 게 땅내예요? 아무 냄새도 없는데요?”
“그래. 하늘이는 아직 모를 거야. 하지만 나중에 할미 나이가 되면 느낄 수 있을 게다. 요즘 들어 할미에겐 땅내가 더욱 고소해졌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지금 알지 못하는 냄새를 맡게 되나보라고, 하늘이는 그렇게 할머니의 땅내 얘기를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밥을 짓고 있는 엄마에게로 간 하늘이가 어젯밤 할머니께 들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엄마한테 했습니다.
물론 땅내 이야기도 했지요.
“엄마, 엄마, 할머니 코는 이상한가 봐. 글쎄 땅 냄새가 난다고 하셔.”
“뭐라고, 무슨 냄새?”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땅 냄새 말이야. 요즘 들어 땅 냄새가 더욱 고소해졌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
하늘이 말에 엄마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이야. 할머니가 정말 그렇게 말했대두.”
하늘이는 엄마가 자기 말을 믿지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다시 한 번 할머니께 들은 땅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얼핏 엄마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습니다.
“엄마, 왜 그래?”
땅내 얘기를 했다고 눈물을 보이다니, 까닭을 알 수 없는 하늘이가 거듭 물었지만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땅내가 고소해진다는 말을 아직 어린 하늘이는 알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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