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너는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 1:11~19
.
누구나 그렇듯이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찾아와 저도 돋보기를 써야 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40대 때 눈 관리를 잘하지 못하여 왼쪽 눈은 시력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쪽 눈으로 보는 성경 글씨가 가물가물 피곤합니다. 그래도 한쪽만으로라도 성경 읽고, 독서하고, 좋아하는 그림도 보고, 사랑하는 이들을 대면할 수 있으니 여간 다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시력이 1.0이라는데 이는 20미터 밖에 있는 손바닥만 한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시력입니다. 그런데 몽골인은 평균 시력이 4.0, 티벳의 유목민은 5.0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시력이면 낮에도 별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태국의 모겐족은 무려 9.0에 이른다고 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체 가운데 가장 시력이 좋은 동물인 타조는 무려 25.0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면 시력이 10.0 정도 되는데 출산 과정에서 갑자기 밝은 빛을 쐬어서 급격히 나빠진다고 합니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빛이 사람의 본래 기능을 낮춘다니 의아합니다. 문명을 절제하거나 멀리할수록 사람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입니다.
.
“예레미야야,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1:11 새번역).
하나님의 계시 방법이 이채롭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음성, 즉 청각을 중심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씀으로 계시하지 않고 이미지로 계시하셨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듣는 청각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보여주시는 이미지를 보는 시력도 뛰어나야 하며 이미지를 해석하는 능력도 탁월하여야 합니다. 특히 심판과 종말에 관한 계시일수록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
“저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습니다”(1.11).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네가 바로 보았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 보고 있다”(1:12 새번역)고 응답하십니다. 동문서답 같은 대화로 들리지만, 히브리 말법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분임을 강조하는 맥락입니다. ‘살구나무(히 샤케드)’는 ‘지켜보다(히 쇼케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유다의 심판)을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물이 끓는 솥이 있습니다. 그 솥의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1:13 새번역). 이는 유다가 처할 위기의 모습입니다. ‘살구나무’와 연관해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북방 민족에게 맡겨 심판하심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이 사실을 백성에게 전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허리에 띠를 띠고 준비하여라. 일어나거라. 내가 너에게 명하는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여라”(1:17 a 새번역). 예레미야로서는 참 난감합니다. 요나처럼 도망칠 수만 있다면 땅끝으로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고는 계시지만 자기 민족의 멸망과 수치를 예언하는 일은 누구라도 회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우리를 심판하심에 거침이 없는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 예언자가 전해야 할 메시지라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보느냐?”
.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있기를 빕니다. 양극으로 치닫는 세계 질서로 인한 각축과 공정을 상실한 권력의 허세를 봅니다. 이 곤고한 때에 교회는 태평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종말의 예언자에게 주실 환상이 두렵고 궁금합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
찬송 : 351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대니 https://www.youtube.com/watch?v=3rwdK_VuxHk
.
유튜브
2023. 7. 7 금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