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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예레미야 3: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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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믿음과 의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신앙의 마음이고, 의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삶에서 좋은 관계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통의 기억, 그리고 함께 한 오랜 시간, 많은 갈등과 부딪힘, 이어지는 화해 등을 통해 아름다운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게 가족이고 민족이고 신앙 공동체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깨는 일을 배신이라고 합니다.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할 수 있다면 배신하지도 말아야 하고, 배신당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친구를 배신하고 가족을 배반하며 민족을 저버리는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러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신일가의 영달만을 위하여 서슴없이 조국을 배신하고 동포를 핍박한 이들이 국가유공자의 자리를 꿰차고 당시 의로운 길을 걸었던 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역사 왜곡을 지금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운 가치들에 대한 배덕이 그치지 않고 온갖 말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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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배신이란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관계의 방식이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도 배신이 존재합니다. 물론 인간이 배신하고, 하나님은 늘 당하는 편입니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너희를 나의 자녀로 삼고, 너희에게 아름다운 땅을 주어서, 뭇 민족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받게 하면, 너희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만을 따르고, 나를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3:19 새번역). 아, 하나님께서도 배신당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믿었던 나무에 발등 찍힌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마치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지 않은 여인처럼, 너희는 나를 배신하였다”(3:20 새번역). 하나님은 단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매우 섭섭하고 원통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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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알게 합니다. 저는 그동안 부모와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배신하였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사랑과 존경을 몸으로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허접쓰레기였습니다. 깨우침은 늘 늦었고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지만 몰라서 못하는 일은 더 많았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하여 얼굴을 들 수 없었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배신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밥 먹듯 하였습니다. 탐욕과 교만은 물론 위선의 죄를 더하였으니 구제 불능입니다. 거룩을 향한 욕망의 이면에는 교만이 덕지덕지 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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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배신한 자의 비참한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배신당한 하나님의 속내도 아프시지만 배반한 자의 상태는 더욱 비참함을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은 벌거숭이 언덕에서 애타게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를 들으십니다(21). “너희 변절한 자녀들아, 내가 너희의 변절한 마음을 고쳐 줄 터이니 나에게로 돌아오너라”(3:22 새번역). 하나님은 돌아오는 백성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서약하면, 세계 만민이 나 주를 찬양할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복을 베풀 것이다”(4:2 새번역). 문제는 진리와 공평과 정의입니다. 단순히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전인적 회개와 하나님 나라 가치 실현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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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있기를 빕니다. 배신을 일삼은 배은망덕의 죄인입니다. 교묘하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배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넉넉히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착한 이웃들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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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525 돌아와 돌아와 https://www.youtube.com/watch?v=2Hnip3qb7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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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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