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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입니다
예레미야 4:5~18
세상에는 원치 않는 일이 현실이 될 때가 있습니다. 호언장담하며 의욕을 불사르던 정치인도, 죄악을 책망하고 정의를 외치는 예언자도, 백성의 아픔을 위로하고 구원을 실현하는 제사장도 탄식하고 좌절할 때가 옵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진실은 왜곡되며 세상은 난리 통이 됩니다. 땅은 황무지가 되고 성읍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왕이 용기를 잃고, 지도자들도 낙담하고, 제사장들도 당황하고, 예언자들도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4:9 새번역). 그때 사람의 의지는 물처럼 녹아 버립니다. 의욕도 사라지고, 꿈도 무너집니다. 유다 백성은 세상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스스로 속았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입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적군이 먹구름이 몰려오듯 몰려오고, 그 병거들은 회오리바람처럼 밀려오며, 그 군마들은 독수리보다도 더 빨리 달려온다. 이제 우리는 화를 당하게 되었다. 우리는 망하였다”(4:13 새번역). 이는 주전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한 신흥제국 바벨론이 앗수르와 이집트의 연합군을 갈그미스에서 격파한 후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와 이집트로 진격할 것을 전망합니다. 이때 요시야 왕은 앗수르를 돕기 위해 갈그미스로 가던 이집트 바로느고를 무깃도에서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한 바로느고는 귀국 길에 유다에 들러 여호아하스 왕을 인질로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하여 왕으로 삼아 유대에 대한 내정 간섭을 노골화하였습니다.
이 절망의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랫동안 누적되고 축적된 결과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죄악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합니다. “너의 모든 길과 행실이 너에게 이러한 재앙을 불러왔다. 바로 너의 죄악이 너에게 아픔을 주었고, 그 아픔이 너의 마음 속에 까지 파고들었다”(4:18 새번역). 북방 나라가 악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재앙의 이유는 아닙니다. 남과 북의 세계정세가 힘의 숭배를 노골화하고 평화를 비웃고는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패권을 차지하려는 사나운 이들의 탐욕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한 이유는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이라는 점이 성경 저자의 지적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읽으며 한반도의 평화가 실패하고, 강대강의 대결 국면을 통하여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그 이유를 외부에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고 우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평화 의지가 약했던 때문이고, 증오와 갈등을 유발하는 악에 대하여 용감하게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화해의 실천에 게을렀고 사랑과 평화가 가져올 조국의 멋진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적 갈등을 치유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픈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없는데 세계 어느 나라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앞장서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분단 후 변화를 시도하는 노력보다 미움과 증오를 재생산하여 갈등을 극단화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정치가 앞장섰고, 교회도 뒤따랐습니다. 만일 이 땅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된다면 그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탐욕과 권력의 죄악의 인력을 극복하지 못한 탓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평화와 사랑에 대하여 더 용감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의로운 일에 앞장서고 화해를 위한 일에 더 열심을 내겠습니다. 한반도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찬송 : 70 피난처 있으니 https://www.youtube.com/watch?v=TEeWxhlO76o
2023. 7. 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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