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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둘러보아도...
예레미야 4:19~31
예레미야는 슬픔의 예언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예언자로 부르셨지만(1:8) 예레미야는 항상 비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공수표처럼 들립니다. 그는 때리면 맞았고, 가두면 갇혔으며 나중에는 이집트까지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예언자들은 기사와 이적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비하여 예레미야에게는 그런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난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처한 처참한 형편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망해가는 유다가 겪는 환란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의로운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과 핍박을 봅니다. 하나님의 의도라고 여기지만 딱하고 슬픕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만 슬픈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예레미야 못지 않은 애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이고, 배야. 창자가 뒤틀려서 견딜 수 없구나.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몹시 뛰어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구나”(4:19 새번역). 아, 예레미야서는 하나님의 슬픔을 예레미야로 체득하게 하신 책입니다. 예레미야의 슬픔이 곧 하나님의 애통입니다. 하나님이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아파하시는데 오늘 나에게 슬픔은 딴 동네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세속을 떠나 따로 살 수 없는 현실에서 도시 속 은둔자처럼 지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저는 좋은 집에서, 맛난 것 먹으면서, 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세상 부러울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슬픔과 애통은 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탄식은 정도를 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슬파하시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고(25), 성읍에는 주민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29). 도대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자기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4:22 새번역). 유다 땅에 사람은 여전히 있지만 그들은 악한 일에는 한없이 지혜롭고 선한 일에 무지합니다.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일에는 명수입니다. 그게 지식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정적이든 닥치는 대로 합니다. 특히 정적을 골탕 먹이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해서는 주머니를 평생 한번도 열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자가 이 나라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의식 있는 이들은 용기가 없거나 비겁하고, 저들보다 덜 악한 이들은 저들이 파놓은 올무에 걸립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현실을 보시면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다’(25)며 한탄하십니다. 사람 하나 얻는 일이 우주를 얻는 일보다 귀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심판과 진노를 취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십니다(28). 이 땅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도 비통합니다. 저보다 더 아파하시는 하나님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5:1)이 없어 세상이 절망합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고난을 잊고 사는 저희에게 눈물의 예언자를 읽고 마음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눈물샘을 자극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지금은 웃어야 할 때가 아니라 울어야 할 때입니다.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찬송 : 254 내 주의 보혈은 https://www.youtube.com/watch?v=QmYqX-QHd1s
2023. 7. 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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