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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의
예레미야 5:20~31
유다 백성은 듣고 싶은 메시지만 선택적으로 들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선포에는 귀를 막고, 거짓을 말하는 예언자와 자기 권력을 위하여 일하는 제사장의 말에는 귀를 열었습니다(31). 이러한 선택적 편향은 한 마디로 탐욕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음행뿐만 아니라 자기 욕망에 복무하느라 하나님의 의를 배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이를 질타하는 예언자의 회개 외침을 철저히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를 심판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안일과 쾌락을 인생의 제일 목표로 삼은 예루살렘 중산층의 회개 거부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언자가 전하는 심판의 경고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듣고도 무시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외치는 메시지의 대상인 예루살렘 중산층을 오늘 서울 강남으로 대표되는, 경제주의에 빠진 부유한 교인들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비교일까요? 정의와 공평을 잃어버리고, 인애와 자비를 배반한 한국 교인에게 주시는 경고로 읽는 일이 지나친 걸까요? 불의에는 침묵하면서도 불이익에는 견디지 못하는 이들, 갖은 불법을 자행하는 권력자 앞에서는 몸을 한껏 낮추면서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 앞에서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막장으로 모는 오만무도한 이들 말입니다. 맘몬의 가르침에 넘어가 가난한 사람의 작은 양 새끼까지 서슴없이 빼앗는 부자의 탐욕(삼하 12:1~6)을 당연시하는 이들이야말로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할 사람이 아닐까요? 특히 양 내가 나고 촌티(?)가 흘러야 할 목자에게서 향내가 진동하고 귀티가 흐르는 현실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남을 속여서 빼앗은 재물로 자기들의 집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도를 부리고, 벼락부자가 되었다”(5:27 새번역). 맘몬의 악한 가치관과 비겁한 철학이 스며든 경제주의 논리에 복무하며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얻는 부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왜곡하는 이 뻔뻔함은 누가 가르쳤나요? 하나님의 불편한 속내는 계속됩니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돈다. 악한 짓은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운다”(5:28 새번역). 하나님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악한 궤계에 분노하십니다. 돈을 모으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함을 책망하십니다. 그런 이들은 고아의 억울한 사정을 올바르게 재판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공정한 판결도 하지 않습니다(5:28). 같은 잘못에 전혀 다른 판결을 밥 먹듯 하는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반어법으로 묻습니다. “이런 일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러한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5:29 새번역)
하나님의 분노가 그때 유다에만 국한된 일일까요? 지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이 사회와는 무관한 일일까요? ‘지금 이 나라에서도 놀랍고도 끔찍스러운 일들이’(30)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정치인, 돈에 환장한 경제인,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기며 부자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 지도자, 권력의 악행과 전횡을 눈감아 주느라 저널리즘의 신조를 져버린 언론인과 지식인, 이들이 견고한 오각동맹을 자랑하는 이 세상입니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5:31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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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악인이 번성하는 시대에 의인의 기도는 효력을 잃고 있습니다. 뒤집힌 질서를 회복하기에 너무 늦은 이때 저희의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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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68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https://www.youtube.com/watch?v=vC7nglEj5Ng
2023. 7. 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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