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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청개구리 신앙
예레미야 6:16~30
“스바에서 들여 오는 향과 먼 땅에서 가져 오는 향료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희가 바치는 온갖 번제물도 싫고, 온갖 희생제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6:20 새번역). 신앙에 본말이 전도되면 신앙 없음보다 더 추해집니다. 종교가 형식화되면 세속보다 더 타락합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썽꾸러기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아비를 일찍 여의고 어미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어미가 하는 말에는 언제나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산으로 가라 하면 강으로 가고, 일하라고 하면 놀러 다니고, ‘개굴개굴’ 울라고 하면 ‘굴개굴개’하고 울었습니다. 병이 난 어미 청개구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지 않은 것은 안 어미는 아들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을 냇가에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무덤을 산에다 만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미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난생처음 어미의 말을 따라 무덤을 시냇가에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어미의 무덤이 물에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울어댑니다. 이 청개구리가 유다이고, 오늘의 교회처럼 보입니다. 우리 신앙이 청개구리 같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 백성 앞에 걸림돌들을 숨겨 놓아서, 모두 돌에 걸려 넘어지게 하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 함께 넘어지고, 이웃과 그 친구가 다 함께 멸망할 것이다”(6:21 새번역). 지금 유다의 상황은 한두 사람이 의롭다고 자기만 구원 얻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아비와 아들이 함께 넘어지고, 이웃과 친구가 함께 멸망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그동안 구원의 개별성을 강조하여 구원의 효과는 인격적 수용에 의하여 각자에게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맞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공동 운명체입니다. 지금 유다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착하고 의롭게 살았다거나 바른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의 구원은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개별성과 집단성이 혼재되어 있다고 해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개인과 공동체를 따로 떼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복음이 스며든 사회는, 구원의 개별성이 강조된 사회는 반드시 공동운명체적 사고가 편만해지기 마련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제도화되어 하나님으로부터 품부된 생명을 함께 풍성히 누립니다.
이게 못마땅한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평등을 갈구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불평등을 꿈꾸는 이들도 의외로 있습니다. 자신이 남과 똑같게 사는 현실이 불편한 사람들, 오늘과 같은 질서의 세상에 대하여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왕과 귀족과 종교인 등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고급 인생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책임과 권리가 주어진 민주 제도를 마뜩잖아합니다. 그런 이들일수록 왕조시대를 그리워하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고, 미 군정시대를 그리워합니다. 결사적 반공주의도 그런 이들이 만들어낸 조작물이며, 이 일에 앞장선 교회 역시 평등의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독생하신 주님은 공생의 세상을 사랑하신 분입니다(요 3:16).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가르침을 거역하며, 하나님 나라 질서를 못마땅해하는 저희입니다. 믿음의 길을 오롯이 걸을 수 있는 건강한 지성과 따뜻한 영성을 주십시오.
찬송 : 516 옳은 길 따르라 https://www.youtube.com/watch?v=zoISvzFfibU
2023. 7. 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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