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위선
예레미야 9:7~16
유다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진리에 서서 정의를 회복하고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입니다(7:5~7). 예레미야는 이를 열심히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유다 백성을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 때문입니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전을 신격화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집트와 바벨론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지만,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들은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내외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백성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전 신앙에 더욱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백성의 보편적 정서와 달랐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이야말로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이 가진 성전 신앙을 ‘거짓말’이라고 질타하였을 뿐만 아니라(7:4)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이라고 비판하였고(7:11) 결국에 성전은 무너져 ‘만민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26:6). 예레미야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판단한 백성은 예언자에게 몰려와 죽이려고 하였고, 제사장과 예언자 등 체제의 종교인과 정치 지도자들이 사형을 들먹이며 위협하기까지 하였습니다(26:9,11).
예언자의 메시지가 백성의 일반적 정서와 다를 때 예언자는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유대인의 종교적 핵심, 신앙의 기초가 성전에 터한 만큼 그것을 부정하면 백성으로부터 죽임당할 것을 각오하여야 했듯 오늘 예언자의 혼을 품은 이들에게도 이 각오가 필요합니다. 예언자란 존경받고 칭찬받는 명예로운 직분만은 아닙니다. 예언자란 달콤하고 근사한 향내를 풍기기보다 군내가 배인 양 냄새에 익숙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이 길을 자처할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그 길 걸을 자신이 없으면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의 한 부분을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바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에는 교회를 하나님과 동일시하였고, 오늘날에는 예배와 신학과 교리와 제도를 신격화하는 일들이 너무 가볍게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은총화 된 맘모니즘에 속지 않도록 정신차려야겠습니다.
심판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 백성의 혀는 독이 묻은 화살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말뿐이다. 입으로는 서로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서로 해칠 생각을 품고 있다”(9:8 새번역). 영락없이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를 향하시는 말씀입니다. ‘혀’와 ‘독이 묻은 화살’과 ‘거짓말’은 거칠고 알맹이 없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대한 책망입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용서에 한없이 인색합니다. 기도는 말 그대로 기도일뿐 실천으로 행동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미려한 기도에 흉측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위선의 죄가 큽니다. 남과 같은 죄를 짓고도 겉으로 안 그런 척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러한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9:9 새번역) 어느 누구도 주님의 질문 앞에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위선의 죄가 큽니다. 기도한대로 살겠습니다. 입의 기도가 삶의 기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보다 신앙의 일면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일이 없는지 살피겠습니다.
찬송 : 503 세상 모두 사랑없어 https://www.youtube.com/watch?v=GLV2YnGKdqg
2023. 7. 25 화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