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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혹은 거짓
예레미야 10:1~16
사람이 만든 창작물 가운데 가장 신박한 것이 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반만 인정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했다.” 이 말은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1804~1872)가 자신의 책 《기독교의 본질》(1841)에서 한 말인데 창세기 1:26~27을 뒤집는 그의 재치가 정말 신박합니다. 그에 의하면 신이란 인간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신학’은 사실 ‘인간학’이며 인생의 목적은 신을 통하여 인간을 찬미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종교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신이 선한 것은 인간이 선하기 때문이고, 신이 전지전능한 것은 인간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식이 짧아서 그의 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교가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을 긍정합니다. 그의 주장이 까칠하여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신학과 신앙이 탄탄한 근육질을 갖추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스콜라철학에 비하면 경천동지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철학이 묻는 질문에 신학이 답을 하는 방식은 교회가 스스로 강해지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만일 이런 시도조차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와 신학은 일반종교와 유사한 그 나물에 그 밥, 바늘 뼈에 두부 살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질문과 도전이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면 내면이 튼튼해집니다. 덕분에 교회는 정신을 차려 신앙의 본질을 더 깊이 사색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방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는 풍속은 허황된 것이다. 그들의 우상은 숲 속에서 베어 온 나무요, 조각가가 연장으로 다듬어서 만든 공예품이다”(10:3 새번역). 우상은 인간이 만들었습니다. 그 근본은 탐욕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빌던 처음 종교의 모습은 갈수록 탐욕스러워졌습니다. 힘을 가진 자는 약자를 윽박질러 속이고, 종교인은 이를 기꺼이 용납해주었습니다. 권력자와 종교인이 이인삼각 한통속이 되어 백성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종교야말로 인간이 생각해낸 최고의 통치 수단인 셈입니다. “은과 금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망치로 못을 박아 고정시켜서, 쓰러지지 않게 하였다”(10:4). 베어낸 나무를 솜씨 좋은 은장색이 가공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하지만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하여도 우상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구경과 감상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인격이 아니니 사귐과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울수록 가짜가 많습니다. 가짜 얼굴, 가짜 논문, 가짜 학위와 속임수 권력으로는 진실을 담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지향성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악한 흐름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막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짝패가 되어 신바람이 났습니다. 문제는 가짜가 힘을 가지면 진짜를 가짜로 몬다는 점입니다. 신고전주의 화가 장 레온 제롬의 <우물에서 나오는 진실>(1896)이 그 처절한 슬픔을 묘사하였습니다. 포이어바흐는 “자비롭지도, 공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고 했는데 그런 신을 섬기는 교인들이 오늘 교회 안에 많습니다. 그러니 권력자는 교회를 깔보고 지성인들은 교회를 비웃습니다.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런 교회를 거부합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주님,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진리를 찾는 이들의 목마름이 심합니다. 우상에 빠져 진리를 조롱하는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림:
쥘 달루의 조각 <진실>은 한 쌍의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의 옷을 가로챈 '거짓'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장 레온 제롬의 <진실>이나 퐁상의 #우물밖으로나오는진실 을 검색하여 보십시오.
찬송 :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https://www.youtube.com/watch?v=I-oJO0t3I-A
2023. 7. 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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