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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0:17~25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 가운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낮에 입었던 옷을 반드시 가지런히 개어 머리맡에 놓는 일이고 신발은 신기 좋도록 신발코를 밖으로 향하게 합니다. 단칸방에 많은 식구가 살아서도 그렇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불각시처럼 닥칠지도 모르는 난리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던 셈입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을 살아낸, 슬픔과 고통의 과정을 뼛속 깊이 겪은 전쟁 세대가 몸으로 실천하는 삶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 자녀들에게 이런 주문을 하면 영락없는 꼰대 소리를 들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유다에 대하여 심판을 진행하고 있음을 주지하고 피난 보따리를 꾸리라고 촉구합니다. “포위된 성읍에 사는 자들아, 이제 이 땅을 떠날 터이니 짐을 꾸려라”(10:17 새번역). 피난 보따리에는 가장 귀하고 요긴한 물건만 담습니다. 여름철 피서가는 여행 가방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도 전처럼 피난을 가거나 피난 보따리를 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도자라는 이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전쟁을 획책하는 언동을 일삼고 있는 즈음에 과연 피난 보따리를 싸게 되면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가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에 유다 백성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장막이 부서졌다. 장막을 잡고 있던 줄도 모두 끊어졌다. 우리의 자녀들도 모두 떠나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우리의 장막을 다시 칠 사람도 없고, 휘장을 달 사람도 없다.”(10:20 새번역). 이런 절망이 우리의 경우가 되지 않으려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정치 지도자의 죄를 물으십니다. “백성의 목자들이 미련하여,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지 않더니, 일이 이렇듯 뒤틀려서, 우리 백성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구나!”(10:21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고난에 직면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도자의 우매함과 신실하지 못함을 지적하십니다. 맹목적 신념과 천박한 아집의 지도력은 백성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세습 왕조시대가 아닌 민주제도 아래에서, 그것도 교회와 교인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지도자가 등장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어쩌면 혹독한 고난은 당연한 귀결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일을 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만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예언자의 설교가 들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예언자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은 탓입니다. 체제의 종교인이 하는 ‘평화하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기도합니다. “주님, 형벌로 주님의 백성을 채찍질하여 주시되,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다스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10:24 새번역).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너그러운 징계를 요구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생명이 단절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비만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야말로 오늘 이 시대를 예언자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기도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와 이렇게 많은 교인이 있으면서도 지도자를 보는 안목이 짧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가 모자랐습니다. 그 결과 벌을 받더라도 너그러움을 베풀어주십시오.
찬송 : 397 주 사랑 안에 살면 https://www.youtube.com/watch?v=ohsHI2JPSwc&t=26s
2023. 7. 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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