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거짓 예언자
예레미야 14:13~22
어떤 사람이 회사에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탔습니다. 어떤 사람이 밥을 먹기 위하여 식당에 들어가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소란을 부리거나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고 침 뱉음을 당하고 경찰에 체포되고 범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대명천지에 ‘무슨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백인이 다니는 식당에는 흑인이 갈 수 없었고, 버스도 백인과 흑인이 나란히 앉을 수 없었으며 흑인은 투표하기 위하여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없었습니다. 불과 60여 년 전 미국에서는 일상이었습니다. 이때 이런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평화 행진을 하였습니다. 대열에는 소년도 있었습니다. 행진이 끝나고 경찰이 소년을 불렀습니다. “너 몇 살이냐?”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아홉 살이에요.” 경찰이 다시 묻습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소년이 또박또박 대답했습니다. “내 이름은 자유Freedom에요.”
이 이야기는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의 책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 담긴 내용입니다. 하워드 진은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에 앞장서 온 행동하는 지성인의 표상입니다. 그의 말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이미 사태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때에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그 방향을 지지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진영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고, 극단주의에 이용당할 폐단이 있고, 중립적 가치를 가진 개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하워드 진의 말은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깊게 새겨야 할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늘 우리 시대의 갈등 상황을 이념 대립, 즉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좌익과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우익 간의 가치 대립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 지대에 놓고 양쪽을 비난합니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양심과 보편과 평화와 진실의 문제입니다. 상식과 양심과 보편과 평화와 진실에 취약한 이들이 오늘의 문제를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거두절미하면 거짓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 활동하던 유다 종말의 시대에도 치열한 진영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쟁은 없다. 기근도 오지 않는다. 평화의 시대가 오도다’(13)고 외쳤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외침이 참 예언처럼 들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 있는 유다 백성으로서는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은폐하기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뉘우치고 회개하며 돌이킬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그 예언자들은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예언자로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명하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이 백성에게 예언하는 것은, 거짓된 환상과 허황된 점괘와 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이다”(14:14 새번역). 오늘 이 세상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외침이 진짜 같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정신차려야 할 이유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가짜에게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번뜩이는 지성으로 가짜를 분별하고 따뜻한 영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겠습니다. 믿음과 힘을 주십시오.
찬송 : 523 어둔 죄악 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A3h5ocbbq3w
2023. 8. 4 금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