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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의 죄
예레미야 15:1~9
하나님의 분노가 심각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거짓 예언자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거짓 예언자도 문제지만 그런 속임수를 가리지 못하는 이들은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상식과 불공정을 자행하며 교묘하게 악을 도모하므로 역사의 퇴행과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도 문제지만 이런 이들을 가려볼 줄 모르는 무지는 더 큰 걱정입니다. 이탈리아의 보수주의자 조세프 드 메스트로(1753~1821)가 한 말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스코틀랜드의 작가 새무엘 스마일스(1812~1904)는 자신의 책 《자조론》에서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한 사회가 성숙하려면 구성원이 성숙해야 합니다. 그 구성원의 수준이 낮으면 사회 수준도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정치가 너무 대립적이어서 식상하다는 이들이 많은데 플라톤이 《국가》에서 한 경고를 들어야 할 듯합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 의지를 다시 천명하십니다. “그들이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을 자는 굶어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네 가지로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칼에 맞아 죽게 하며,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 치우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15:2~3 새번역). 전염병과 전쟁과 기아, 그리고 포로가 될 것이라는 네 가지 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심판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까지 경악하게 하였습니다. 종교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민족 신들은 민족주의 안에 존재하는 신이지만 하나님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절대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런 일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4) 때문이라고 지목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13대 왕으로 29년간 유다를 다스리며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분열된 이스라엘과 화해를 도모하고 앗수르의 침공도 이겨낸 개혁 군주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선왕의 치적을 잊어버리고 악정을 일삼고 유다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여 선왕 때 허물었던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위한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남북조를 합하여 가장 긴 55년이나 왕위에 있었지만 선왕의 선행을 배반하였습니다. 유다에 바알을 위해 단을 쌓은 사실은 모두 세 번이 있는데 여호람의 아내가 된 아합의 딸 아달랴가 스스로 왕이 되었던 때(왕하 11장), 선왕 요담의 선행을 배반한 아하스 때(대하 28:1~4), 그리고 므낫세(왕하 21장)인데 므낫세 때에 다른 이들보다 더 공개적으로 바알을 숭배하였습니다. 선왕의 선행을 외면하고 악행을 도모하는 자를 주님은 심판하십니다.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15:6 새번역). 므낫세의 죄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화해와 번영의 기조를 이어받아 더 발전시켜야 할 정치권력이 도리어 매사에 퇴행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깨우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므낫세의 죄에 빠지지 않기를 빕니다.
찬송 : 342 너 시험을 당해 https://www.youtube.com/watch?v=jZS3R2ec5G0&t=53s
2023. 8. 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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