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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학도와 목회자가 되시길
# 10년전 수많은 분들이 공유했던 글입니다. 특히 후배와 후학들이 읽었으면 하고 다시 올립니다.
가끔 제게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목회적 준비와도 관련되어 있으니 이에 대한 답변을 함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 언어를 준비하십시오.
일단 영어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공부하든 유학을 가든, 영어가 안되면 제대로된 신학 공부는 어렵습니다. 만일 영어가 부족하시면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우리 말로 된 신학 서적들을 탐독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신학을 하시려면, 영어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전공을 무엇을 하든 성서 언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최소한 기초는 해 놓으십시오. 신학은 성경을 토대로 하는 학문입니다. 성경을 기본으로 성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역사신학을 하는 것이니 성경의 언어를 해 놓아야 제대로 신학을 합니다.
그리고 일반 수준을 넘은 큰 학자가 되고 싶다면, 독일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라틴어를 미리 그리고 오래 준비하십시오. 인문 학문계에서 아직까지는 많은 분야에 있어서 독일 학문의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신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독일 신학의 약점도 많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프레토리아 대학의 오경 비평학의 거장, 남아공 신학계에서 천재로 불렀던 러루 교수 (Le Roux)는 저와 대면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오경 연구를 본문을 쪼개서 재구성하는 역사비평을 하기 보다 통합적 시각의 문학비평으로 접근할 것이라 하니 했던 말입니다.
"미스터 김! 잘 알아두세요. 미국의 성서신학은 독일보다 15-20년이 뒤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반은 맞고 반은 전혀 틀린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독일 성서 신학의 강점인 본문의 파편화, 난도질에 의한 비평적 작업의 발전과 거기서 얻은 결과물을 미국이 나중에 가져다가 공시적 통합적 작업의 기반으로 삼아 사용한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은 독일이 따라올 수 없는 나름대로 성서 신학의 큰 강점이 있죠. 성경 본문의 놀라운 통일성과 문학적 탁월성을 입증한 문학비평이 영국과 미국에서 꽃을 피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신학자는 동양적 사고의 훈련에 따른 더욱 더 큰 '통합의 안목'을 지녀 큰 강점을 지니고 신학을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독일은 철학과 신학, 성서 신학에 있어서 자유주의와 비평주의의 온산지인데, 통합보다는 분석에 집중하는 학문적 관점에서 그들의 천재성을 뛰어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천재라 해서 다 옳은 건 아닙니다. 그들은 '통합적 관점'이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러루 교수는 영국과 미국의 저명한 문학비평 신학자들을 전혀 모르고, 그들의 저서를 단 한권도 읽지 않았더군요. 그러면서 막연한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적을 알고 이기려면, 영어와 독일어및 몇 가지 언어에 능통해 그들의 주장과 이론, 철학에 정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서 약해 큰 학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신학 각 분야의 교과서적인 책들을 읽되, 여러번 집중해서 읽으십시오. 이것은 목회자의 신학 훈련에도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들이 나누어준 강의 계획안 (Syllabus)를 버리시면 안됩니다. 거기에 나온 필독서와 추천서는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특히 뛰어난 교수님들이 일등으로 추천한 책들은 무조건 옷을 팔아서라도 사서 읽고 탐독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정평이 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은 한번 읽고 만족하면 안됩니다. 대부분 실제로 한번 읽고선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흔히 이런 어려운 책들은 중간에 읽다가 포기합니다. 이해가 안되니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책이 오류 투성이의 번역이라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래저래 그 책이 이해가 안될 때는 그 분야의 정통한 사람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며 독서하시면 됩니다. 이해가 다 될 때까지 몇번이고 읽으십시오. 각주까지 샅샅이 읽고 이해해야만 합니다.
신학 노선이 다른 중요한 책들도 정독해서 꿰뚫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런 책은 사탄 취급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편협하게 만드는지 아셔야 합니다. 보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책까지 모조리 섭렵하고 당당히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무엇보다 보수의 시야가 엄청나게 넓어집니다.
그렇게 각 분야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적인 책 한권 내지 두권을 꿰뚫어버리면, 그 다음 책들이 모조리 쉬워집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비결이죠.
언어 공부도, 예컨대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죠. 어떤 사람은 문법서를 10가지를 다 떼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영어 실력은 별로 입니다. 저의 경우 성문 종합영어를 5번 정도 봤습니다. 다른 책 일절 안보고 이 책만 뚫었죠.
그 책을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매번 연습문제와 작문까지 한 문장도 안 빼고 철저히 풀었고, 책에 나온 모든 단어를 달달달 외웠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리고 나서 다른 문법서들을 보니, 며칠 만에 다 볼 정도로 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영어 서적을 읽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죠. 이것이 다른 공부할 때도 통하는 비결이라는 이야기죠.
세째, 신학 외의 분야의 다양한 서적들을 다독 하십시오. 철학, 역사, 정치, 문학, 등등 정평이 나 있는 책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것 역시 목회자들에게 필수 사항입니다.
흔히 보수적 관점을 가진 신학자나 목회자의 가장 큰 문제가 성경만 아는데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어설프게 알거나 잘못 알 때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집니다. 그러니 위에 두번째 말씀 드린 대로, 신학을 풍성하게 공부해야만 합니다.
이런 문제에 덧붙여, 안목이 뛰어난 보수적인 신학자나 목회자가 계시지만, 많은 보수 성향의 학자나 목회자들은 다른 분야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죄송한 표현이지만 소위 "꼴통" 성향을 보입니다. 많은 경우 어떤 사안이나 사건에 대해 '무지'하거나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언론이나 시류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한마디로 '무지'해서 그런 것이고, 쎄게 말하면 '무식'해서 그런 겁니다. 이럴 때 말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도무지 공부하려고, 알려고 하지를 않고, '오직 예수,' '예수 천당'만 외칩니다.
우리는 예수의 유일성과 기독교의 절대성을 제 목숨처럼 생각하고 양보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으며 저 또한 그러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관찰하고 진실을 파악할 줄 아는 안목과 눈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해야만 합니다.
네째,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독을 하든 다독을 하든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합니다. 개인 묵상을 위해서든 연구를 위해서든 무조건 읽으십시오. 묵상을 하다보면 연구가 되고 연구를 하다보면 깊은 묵상이 됩니다.
성경 읽는 취향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꺼번에 집중해서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의미를 연구하며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다독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다독과 정독의 균형을 추천합니다. 일단 성경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전개 되는지,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의 의미를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가 되든 목회자가 되든, 우리는 성경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이란 성경의 뜻과 의미를 연구하고 찾아내는 작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정파를 떠나 이념을 떠나, 신학 노선을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의 텍스트인 것입니다.
성경을 만일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읽을 수 있다면 최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좋은 영어 역본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ESV를 추천합니다. NIV와 비슷하나 딱딱한 문체의 NIV 약점을 많이 보완한 좋은 번역입니다. 영문법으로는 어색하나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는 NASB를 추천하고 RSV도 좋은 번역입니다.
한글 성경도 당연히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성경 번역서의 오류는 요즘 주석들도 잘 나왔고, 쉽게 인터넷으로 오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많은 역본들의 비교가 가능해 평신도들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게 성경 연구인 것이죠.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문 확인 등이 필요하면, 요즘 성경 소프트 웨어가 탁월하니 참고하면 되고, 그 분야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흔히 성경은 제대로 읽지 않으며 신학한다고 나불거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 말리고 싶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에 정통해야 제대로 신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신학을 하는 모두 분들에게 기본입니다.
제가 <레위기의 속죄제와 속죄일>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오경 곳곳에 아니 구약 성경 곳곳의 모든 제사 본문들을 찾아서 살펴야만 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 성경에 정통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검색해서 찾아내곤 했지만, 그게 한계가 있는 겁니다. 결국 저는 논문 쓰면서 아마 성경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랍비들의 경우 오경은 물론 때로 아예 구약 성경 전체가 히브리어로 통째로 머릿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관련 본문을 쭉쭉 뽑아서 논쟁을 하니 이길 도리가 없는 겁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성경 프로그램이 있어서 컴퓨터 가져가면 좀 해볼만 합니다. 그래도 어설플 경우가 많아 박살납니다. 그러니 성경 많이 읽어야만 하지요.
가장 중요한 점으로, 결코 오해해선 안될 것이 있습니다. 성서 언어에 능통하고 신학 서적을 섭렵했다고 뛰어난 설교자나 좋은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탁월한 신학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목회자의 필수적 자질은 영성과 인격이며, 탁월한 신학자의 요건은 창의력과 통찰력이라 생각합니다. 학식과 실력은 그 다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행여라도 신학 공부해서 출세할 생각, 좋은 곳에 취업(?)할 야망이 있다면, 의도가 불순하니 출발을 다시 하십시오. 우리는 공부하고 잘 준비한 뒤, 그분의 부르심, 소명을 따라 쓰임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이끈대로 갔듯이, 부르신대로 순종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좌향좌 하면 좌편으로, 우향우 하면 우편으로 가시면 됩니다. 방향과 갈 길을 자신이 외통수로 지정해 놓고 고집을 부리면, 여러분만 괴롭고 하나님도 참 난감하실 겁니다. 그곳이 바닥이라도 순종하여 내려가면, 거기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정체이고, 행복의 비결입니다.
기도 많이 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잘 준비해서 쓰임받는 종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을 하십시오. 목회자가 되시든, 신학자가 되시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신학에 정통한 목회자, 목회에 능통한 신학자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 과학의 시대에 신학은 사양길을 걷는 한물 간 학문, 퇴물이 된 학문이라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히틀러 정권과 불의에 맞서 싸운 본회퍼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의 역사적, 시대적 사명은 여전히 너무나 크고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심을 확신하면서 지금 신학을 공부합니다.
제 글이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천재 신학도이자
<신도의 공동생활>에 잘 나타난 감동적 목회를 하고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며 행동하는 선지자였던 본회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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