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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누는 개
얼굴에 똥칠이라도 해주고 싶다
얼굴에 똥칠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부쩍 많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능력도 모자라고 허구헌 날 남 탓만 하는 면상에 말이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릴 때의 마음이 이해되는 듯하다. 예수님도 그런 생각이셨을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역시…
렘브란트가 활동하던 시대의 네덜란드는 칼뱅주의의 영향력이 강세였다. 그런 지역에서 종교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찬밥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종교화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바로크미술의 전성기를 이루던 것에 비하여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냉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거부하고 그 제작을 혐오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시대에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성경 이야기를 주로 그렸다.
렘브란트의 <착한 사마리아사람> 엣칭은 1633년에 제작되었는데 신약성경의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누가복음 10:29~37를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는 여관 주인과 사마리아사람, 그리고 강도 만난 자와 마부와 일꾼 등이 가운데 배치되어 있다. 왼쪽에는 여관 창에 몸을 기대고 이 일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고, 뒤쪽에는 한 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다. 우물곁에는 닭이 모이를 쪼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은 먼저 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 그리고 강도 만난 자에게 모아진다. 하지만 곧 그림의 아래에 있는 개에게 눈길이 간다. 지금 개는 막 볼일을 보느라 무지(?) 힘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이 약간은 불편하고 지저분하면서도 한편 흥미롭기도 하다.
예수의 탁월한 가르침을 작품화하면서 왜 렘브란트는 똥 누는 개를 그려 보는 이를 당혹하게 하는 것일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말만 앞서며 행함이 없는 당시 유대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얼굴에 똥 칠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동판에 똥 칠을 할 수가 없으니 똥 누는 개라도 그려 그들의 몰염치와 무정함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유대 사회에서 가장 경멸스러운 동물이 바로 개 아니던가….
하지만 그림을 그런 식으로 감상하는 것은 고상하지가 않아 보인다.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다.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들도 유대인이고, 강도 만나 죽어가던 자도 유대인이고, 그 옆을 지났던 제사장과 레위인도 다 유대인이었다. 만일 세 번째 강도 만난 자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을 이제까지의 의도대로 등장시킨다면 당연히 유대인이어야 했다.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은 의외였다.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취급받던 사마리아사람이었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구원은 세 번째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그는 의외의 사람, 개 같은 존재다. ‘하찮은 개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메시야 사상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정곡은 아니었을까? 렘브란트는 이 이야기를 하시는 예수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유추가 틀리지 않다면 오늘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도 교만과 위선이 가득한 유대인처럼 이 이야기를 들으며 ‘유대인 메시아’, ‘슈퍼맨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나사렛 찌질이’는 함량 미달이고, ‘개 같은 사마리아인’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며, 우리와 이 시대를 구원할 메시아는 명문대학의 간판과 요란한 이력을 달고 화려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런 환상이 깨어지지 않는 한 우리 시대의 구원은 요원하다.
렘브란트의 작품에 한 가지 첨언한다. 숙박비를 흥정하는 것이나, 우물에서 물을 깃는 일이나, 개가 길가에서 똥을 누는 일이나 다 평범한 일상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는 것 역시 일상이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해야 하는 일상이다. 사랑은 닭이 모이를 쪼듯 하는 것이고, 선행은 물 긷듯 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은 개가 똥 누듯 하는 일상이다.
렘브란트 는 이 주제를 평생의 소재로 삼았다. 1633년 동판화를 필두로 1638년에는 유화, 1941년에는 드로잉을 남겼고, 1644년과 1648년에도 그렸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는 렘브란트의 이 그림을 보고 ‘사상가 렘브란트’라고 극찬하였다. 화가를 사상가로 호칭하는 것은 그의 작품 세계가 범상치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렘브란트가 좋다. 똥 누는 개를 그린 렘브란트가 좋다.
《그리스에서바로크까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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