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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기도’에 담긴 하나님 주권
예레미야 18:1~21
정의가 힘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힘이 정의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힘 있는 사람만 정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어지간히 잘못해도 정상을 참작하고 관용의 대상이 되고 문제 삼지를 않습니다. 설사 사회가 그를 용납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복수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당하여도 속수무책입니다. 몸으로 부당함을 고스란히 받으며 눈물을 삼키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이때 그들이 드리는 기도가 ‘저주의 기도’입니다. 표현이 다소 낯설지만 ‘저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정의로움을 확신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레미야의 세 번째 고백(17“14~18)에 저주의 기도가 있습니다. “저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제가 수치를 당하지는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무서워 당황하게 하시고, 제가 무서워 당황하지는 않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는 그들에게 재앙의 날이 오게 하시며, 갑절의 형벌로 그들을 멸망시켜 주십시오”(17:18 새번역).
같은 잘못을 하여도 힘이 있는 사람은 죄를 묻지도 않고, 묻더라도 가벼운 벌을 받고, 작은 잘못을 하였는데도 과중한 벌이 주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저주의 기도’는 낯선 기도가 아닙니다. “까닭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의 머리털보다도 많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들, 내게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시 69:4). “주님은, 내가 받는 모욕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받는 수치와 조롱도 잘 알고 계십니다. 나를 괴롭히는 대적자들이 누구인지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수치심에 갈기갈기 찢어진 내 마음은 아물 줄을 모릅니다. 동정받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없었고, 위로받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시 69:19~20). 시편 기자는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스스로 복수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로움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마다 빠짐 없이 벌하셔서, 그들이 주님의 사면을 받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로운 사람의 명부에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시 69:27~28). ‘저주의 기도’는 불의한 희생(또는 공정하지 않은 정의)에 대한 정당한 표현입니다. 이는 원수 갚음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신 32:35). 심판과 종말과 절망의 시대의 시대에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18:6 새번역).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죄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거두겠다’고 하십니다(??. 불순종을 계속하고 사악한 일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약속한 복을 거두겠다’고 하십니다(10).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받을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12)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거부하는 한 구원은 심판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저주의 기도’ 소리가 더 커져야 할 때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진흙이 자신의 진흙됨을 인정하지 않고 토기장이와 댓거리를 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 저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그 뜻을 온전히 받들겠습니다.
찬송 : 390 예수가 거느리시니 https://www.youtube.com/watch?v=WOoL5S24qv8
2023. 8. 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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