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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투표 소고(小考)>
1. 내가 몸담고 있는 높은뜻 교회들은 담임목사에 대해 재신임투표를 한다. 6년 시무가 끝나면 재신임을 묻게 되는데 그 세부 기준은 각 교회마다 다르다. 어느 교회는 교인의 1/2 이상 찬성이면 재신임이 되는 반면, 어느 교회는 그 기준을 2/3 이상으로 하고 있다. 각각 그 기준은 교회의 정관에 명시해 놓는데, 이렇게 중요한 재신임의 기준이 서로 다른 것은 그만큼 높은뜻 교회는 자율성을 가진 별개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2. 내가 시무했던 [높은뜻 정의교회]나 지금의 [높은뜻 덕소교회]는 재신임 기준이 2/3로 돼 있다. 가끔 다른 교회들이 왜 재신임 기준을 1/2로 바꾸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한번 청빙이 된 목사는 웬만해서는 교인과 함께 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다. 부부도 살다보면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헤어지지 말고 함께 가야 가정이 깨지지 않는다는 말도 한다.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3 기준을 고집스럽게 바꾸지 않았다. 그것은 2/3 기준을 가뿐히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알량한 자만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높은 기준을 끝까지 고집한 이유는, 나는 1/2 찬성이나 2/3 찬성이 내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나는 [높은뜻 정의교회]에서 한 번, 그리고 [높은뜻 덕소교회]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교인들의 재신임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내 생각은 90% 미만이 나오면 교회를 그만두려고 마음 먹었다. 교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정한 기준에 의해 거취를 결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6년동안 그 기준에 부합되려고 최선을 다해 목회했다. 스스로 기준을 높게 잡고 나를 옥죄는 목회를 했던 것이다.
5. 예배당에 앉아 있는 교인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내 설교를 듣기 싫어한다면,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나의 기도를 가증스럽게 생각한다면, 열 가정 중 한 가정 이상이 목사가 보기 싫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열 가정 중 한 가정 이상이 목사의 심방을 거부한다면, 그 공동체에서 더이상 담임목사의 역할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성격상 그게 잘 되지 않는다.
6. 이유 없이 처음부터 나를 싫어하는 교인들이야 없지 않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바꿔놓지 못했다면 나는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내 목회방법과 목회자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재신임투표 자체보다 그 이전의 6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담임목사에게 주어진 6년은 목회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기간이라 여겼다.
7. 내가 섬기는 지금의 교회는 2028년 12월에 내가 은퇴할 때까지 이제는 내게 재신임을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교회와 교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여전히 똑같다.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담임목사를 싫어한다면 은퇴 전이라도 언제든지 교회를 위해서 이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8. 많은 분들이,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는 교인 2/3 의 찬성으로 뽑고 재신임은 1/2의 찬성으로 하는 것이 안정적인 교회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싶다.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는 2/3 나 1/2 정도의 찬성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6년의 기회를 준 후에 재신임을 물을 때는 90% 이상이나, 많이 양보해도 80% 이상의 찬성으로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정관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90% 이상으로 바꾸고 싶다.
9. 목사가 2/3 정도의 재신임 기준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목사 스스로 목회적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고 목회적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6년의 시간이란 그래서 나를 반대하는 교인들을 한없이 품어야 하는 시간이고, 나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하는 시간이며, 목사가 싫어 교회를 나오지 않는 교인들을 조건없이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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