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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나의 비유.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85 추천 수 0 2023.08.20 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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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9:11-2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911-27: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고, 예수 당신이 오심은 잃은 자를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고 하고, 또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해서 사람들은 느끼기를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구약의 모세처럼 이적을 행하여 로마 강대국을 물리치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나라를 세울 것으로 알았다. 예수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아들으라고 귀인이 왕권을 받아오는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역사학자들의 말을 보면 헤롯 대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헤롯 안디바스, 두 번째 아들은 헤롯 빌립, 세 번째 아들은 헤롯 아켈라오였는데, 헤롯이 아켈라오에게 유대지방을 분할해 주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 황제 아우쿠스트의 인준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 로마로 갔는데 이걸 안 유대에서 아켈라오가 왕이 되기를 싫어하던 자들이 저지를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지만 어찌되었던 우물쭈물 어떻게 해서 황제의 인증은 받지 못했지만 아켈라오가 분봉 왕이 외었다고 한다. 그 후에 아켈라오를 반대하던 자들은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유대인들로서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를 쉽게 이해를 했을지 궁금하다.

 

11절로 보면 예수님의 비유에서 귀인은 예수님 자신을 말한다. 귀인이라 함은 가문도 좋고 고상한 인격을 가진 분이다. 먼 나라에 가서 왕위를 받아온다는 것은 크게 보면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부활 승천하여 세상 마지막 심판 때까지를 염두에 두신 말씀이다. 그래서 13절로 보면 귀인이 자기의 종 열 명을 불러서 각각 한 므나씩을 주면서 내가 왕위를 받아올 때까지 장사를 열심히 하라한 것이다.

 

이제 귀인은 먼 나라로 떠나고, 그 후에 이 귀인이 왕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방해를 놓았지만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를 않았다. 결국 귀인은 왕위를 받아가지고 와서 종들을 불러서 장사를 어떻게 했는지? 불어나게 했는지, 까먹었는지를 물었다.

 

16절에 보면 첫 번째의 종이 와서 주인이 주신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로 만들었다고 했다. 참 듣기가 좋다. 예수를 믿으면서 까먹으면 안 된다. 불어나야 한다. 자기에게 생명의 씨앗이 심겨졌으면 불어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썩은 죽은 씨앗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일 년 믿어도 그만, 10년 믿어도 그만이라면 예수 믿은 유익이 뭐냐?

 

학교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하면 다른 학생을 가르친다. 가르치면 선생이다. 자꾸 가르치면 올라간다. 물망에 오른다. 그런 것처럼 신앙적으로 낮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믿고 열심히 믿었다면 그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지도자급으로 올라가게 돼 있다. 그럼에도 예수 믿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여긴다면 바로 너는 짓밟히는 인생이 된다. 그런 정신으로 일반 세상에 나가도 마찬가지다.

 

17절에 보면 착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종이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한다면 굉장한 것이다. 종이 이리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사람은 귀가 있고 눈이 있고 감성이 있는지라 다섯을 남긴 자와 수건에 꼭 싸 두었던 자가 열 므나를 남긴 자에게 주는 포상을 볼 때 마음속에 아무 느낌이 없었을까?

 

예수 믿는 자기가 어느 것을 더 귀히 여기느냐그게 있다. 그 신앙심에 따라서 주님이 대해주는 건 다르다. 그냥은 아니다. 보복하시는 예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심은 대로, 뿌린 대로 나고 거두어진다. 누가 심었느냐? 각자 자기가 심는 거다.

 

다섯을 남긴 자는 열 므나를 남긴 자가 받는 포상을 보면서 마음속에 내가 조금만 더 힘썼더라면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후회를 했을 것이다. 한 므나를 수건에 싸둔 자도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내가 주인을 내 마음대로 판단했구나그렇게 후회를 했을까, 아니면 왕권을 받아온 주인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래, 너 잘 났다그렇게 생각했을까?

 

예수 믿는 게 어떻게 믿던 믿은 대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자기가 열심을 부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사는 것은 남에게 안 간다. 자기에게 온다. 자녀를 키우는 것도 부모의 정신이 자녀에게 들어간다. 바른 정신 대신 물질만 물려준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죽이는 거다. 이게 실감이 나느냐? 자기 자식이 그냥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사니까 먹고 사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자녀가 신앙심에서 비뚤어져 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쳐야 한다.

 

열 고을을 차지하라.’ ‘열 고을을 다스리라할 때는 그가 열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의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자기를 못 다스리면 남을 못 다스린다. 자기 한 사람을 못 다스리는데 어떻게 열 고을을 다스리겠느냐? 못 다스린다. 원리다. 자기를 지혜롭게 못 만들면 자녀 또한 지혜롭게 못 만든다. 이렇게 되면 그저 일반 부모형제 그런 식이지 신앙 믿음 안에서 주님의 신앙의 유업을 받는 건 안 된다. 일반사람들과 똑같다.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는 사람을 억압이나 강압으로가 아니다. 사람을 잘 다스리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스리는 다스림은 종을 부려먹듯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다스림이다. 이게 교회의 다스림이다. ‘예수 잘 믿어 복 받고 교인이 가져오는 헌금이나 걷고하는 그 목적이 아니다. 사람을 다스리려면 차원이 깨달음으로 올라가야 한다. 교인들이 그렇게 되어야 각자 생활반경에서 잘 다스려 나간다.

 

사람을 다스릴 줄 모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눈총이나 받고, 싫음을 당하고, 외톨이가 되고 할 때 한쪽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좋아서 그렇게 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리고 주님의 속을 썩이면서 세상에 치이고 하는 걸 한 면만 보면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으로 알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일에 수종이다. 주님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에게 수종이다.

 

사람을 잘 다스리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하고, 심성도 정서도 잘 알아야 하고, 사리판단을 잘 하여 신속한 판단을 잘 내려야 한다. 많은 사람을 지도 인도할 때는 그런 게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교훈적으로 보면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그래도 쉽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실력이 없는 사람이 중고등부를 가르칠 수 있지만 유치부를 가르치려면 참으로 힘들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려면 그 가르침에서 지혜롭게 다스림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 안 그러면 조금만 있으면 그냥 자기들끼리 싸우고 한다. 아이들은 주일학교부터 자라나오면서 커가면서 실습해가면서 점점 숙달되면서 커지면서 들어가는 것이다.

 

또 청년들은 싸울 줄을 알아야 한다. 싸울 줄을 모르는 청년을 어디에 쓰겠느냐? 주님의 온 식구가 약속의 땅을 향해서 같이 가는데 주님의 식구에게 수종들지 못한다면 애굽인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신:을 보지만 다 애굽성으로 들어가면 어찌 되겠느냐? 안 믿어지면 한 번 해 봐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받을 자다. 말씀을 제쳐놓고 네 판단으로 신앙하지 말아라. 기준은 네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너를 만들었지 인간 너는 완전자가 아니다.

 

먼저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 줄을 모르고는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들은 말씀에서 다스림을 받고 자신의 성품을 잘 닦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배려하면서 내가 말을 할 시간인지 아닌지, 내가 간섭할 건지 아닌지 등 항상 남을 잘 생각하면서 튀어나올 때 튀어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고 해야 한다.

 

봉사도 할 줄 모르면서 가르치기만 하려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가르치기 전에 봉사부터 먼저 배워라. 봉사를 하려면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은 것도 있다. 그것도 다스려라. 철두철미하게 자라나오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겪으면서 지혜를 얻고 마음을 다스리고 그래야 사람이 점점 커진다. 안 그러면 은혜를 못 받는다.

 

하나님의 집에서 일이 안 시켜진다면 어디에 가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불신세상에서? 그건 자칭이 돼버린다. 불신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자기 감정대로 되는 거냐? 안 된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받아야 한다. 봉사심으로 서로 수종들고 하며 배우면서 커져야 한다. 감정도 다스릴 줄 알고,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고. 이게 커질 수 있는 바탕이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자꾸 뭔가 튀어나오면 그건 자꾸 밑으로 떨어지는 거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거냐? 위로부터 허락이 안 되면 안 되는 거다. 어쨌든 한 해 두 해 교사 일을 해 나가면서 열심히 하려고 하면 그런 데서 자기의 일반적인 인품도 닦여지고 자기의 언행심사가 은연중에 다른 사람에게 향기가 날리어지고 하는 거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사람들로부터도 은혜를 받고.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자기 성격 성질부터 고쳐라. 신앙 이전에 고쳐라. 진리를 가지고 보면 사람의 성격 성질 고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신앙심에 대한 질적인 면을 고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참 힘들구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눈으로 보이는 것은 한 므나이지만 이 속에는 백 드라크마가 들어있는 거다.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백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백 일의 품삯이다. 한 므나가 열 므나로 불어났으니 이 종은 노동자 천 명에게 줄 수 있는 품삯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 므나 속에는 하루에 천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 들어있구나.

 

열 고을을 다스린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실력이다. 한 고을에 사는 사람이 몇 명쯤 될까? 열 고을을 다스린다는 것은 돈이 얼마나 불어났느냐하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그만큼 안다는 면이 들어있다.

 

사실 장사꾼이 부지런도 해야 되겠지만 사람을 잘 알면 장사가 더 잘 된다. 장사꾼이 사람을 잡고 싸우면 그 장사꾼은 망한다. 그러니까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 장사를 하면 안 된다. 고치기 전에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 목회를 하면 안 된다.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 목회를 하면 귀신이 들어가고, 교인들 잡고 싸우고, 아니면 인간의 간사성을 떨고, 사람이 감정적인데다 성경말씀의 이치는 안 열어주고 자꾸 사람을 모아서 병 고친다. 방언한다. 안수 한다등등 딴 짓을 한다.

 

지극히 작은 것이 무엇이냐? 지극히 작은 것은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보이는 것이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를 않는다. 다시 말하면 등한시 한다는 게 아니라 잘 모르고 산다는 말이다. 큰 것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작은 것에는 신경이 안 쓰인다 그 말이다.

 

충성은 목숨을 바쳐서 하는 일이라야 충성이다. 지극히 작은 것,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에 목숨을 다해 충성을 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못 본다. 눈에 안 뜨인다. 그럼에도 그렇게 충성을 하니 열 배로 불어남과 동시에 열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실력이 불어났다. 그러니까 고상한 귀인은 충성만 하면 불어날 것을 주시는구나. 따라서 자기가 충성을 했는데도 자기에게 실력으로 불어나지 않았다면 이건 귀인이 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귀인이 준 것은 충성을 하면 할수록 불어나게 돼 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을 심어놓고 매고 물을 주면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된다.

 

살아있는 말씀 한 이치를 지키는 충성을 하면 이 정신 사상은 자기의 실력화 능력화가 된다. 한 므나 속에는 백 드라크마가 들어있듯이 한 이치만 깨달아도 사용량이 많아지는데 더 많은 이치를 안다면 무한한 이치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원리가 그런 것이다.

 

생명 있는 좁쌀 하나를 심으면 그 열매의 좁쌀은 전부가 살아있는 좁쌀이다. 그 살아있는 좁쌀을 심으면 또 난다. 그러니까 몇 천 몇 만 개가 불어나니 이것을 어떻게 계산을 할 수 있겠느냐? 농부는 그 맛으로 그 열매를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거다. 신앙의 열매도 그렇다. 이 열매를 생각은 않고 그냥 복 달라고, 자기 기도 들어달라고 교회에 다녔느냐? 그렇다면 다시 믿어라. 늦더라도 다시 믿어라.

 

교회에서 이 생명의 말씀의 해석을 일반적인 재간이나 취미를 끌어다가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일반사람들의 재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해석을 하니 교회가 일반화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이건 그냥 세상이다. 그러니 믿음의 질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한다.

 

우리가 진리이치를 생각하고 연구하고 듣기는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별로다. 별로적으로 듣는 그 자는 모르긴 해도 신앙정신 면에서 자기가 자기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한다면 이는 이방적 신앙이다. 미신 종교적 신앙이 된다. 외식신앙이 된다. 예수를 믿어도 옛날 물을 많이 먹은 분들은 미신성이 많이 들어있다. 진리성이 아니고 세상 미신성이 많이 들어있다. 그거 고쳐야 한다. 오늘날 마지막 신앙사상이 일반화 돼 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20-27: 그러니까 장사를 했다는 거냐,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거냐? 안 했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아무 것도 안 한 사람이 많다. 세상의 어떤 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알아줄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거다.

 

게으른 종에게 그렇게 대우를 해 주는 이유인즉 이 종은 자기의 주인이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하다가 원금까지 없어진다면 나중에 주인으로부터 모진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니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속 편하게 수건에 싸 두었다가 주인에게 도로 주는 게 편하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주인은 강도다.

 

그렇다면 이 종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다른 사람은 장사를 하면서 늘리며 살았는데 이 종은 불어난 게 없으니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기 속에 불어난 게 없다.

 

이런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무슨 말이냐? 첫째는 내가 땀을 안 흘리고 사는 사람, 내가 땀을 흘리고 힘쓰고 애쓰고 돈을 벌었는데 왜 믿으라고 하며, 왜 하나님께 헌금을 하느냐하는 사람, 그러니까 일반 자연은총을 위로부터 받으면서도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잘 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특수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다. 무슨 말이냐? 이런 사람은 돈에 대해 인색하다.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해서 그렇지 깨닫고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살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상을 만드신 그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세상은 없는 게 없이 다 만들어져 있었다.

 

세상 모든 만물보다 인간이 참 중요한 건데, 아담 하와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파리나 모기나 개구리나 각종 나무나 들짐승을 다 만들었다. 모기가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니까 이 모기에게 어떤 권이 있지 않느냐? 인간을 뜯어먹을 권이 있는 거냐?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그런 게 다 있었는데 그런 것들보다 인간을 먼저 만들면 안 되었나?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속에서 자기가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인간 자기 몸속의 신진대사와 성장 노쇠 출생 죽음 등등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간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심은 일반은총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특수은총까지도 받으며 살라고 그렇게 하신 거다.

 

주인의 선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주인을 악하게만 생각을 하고, 주인의 것을 사용하면서도 게으르게 살아온 이 종은 주인의 것을 사용하면서 받고 먹고 마시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주인에 대해 생각하는 머리가 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종은 피어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그나마도 자연은총도 다 빼앗기고, 준 것도 다 빼앗기고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었다.

 

피어난다는 건 말씀 속에서 피어나는 걸 말하는 거다. 그게 참 사람이요 아름다운 것이다. 말씀으로 피어나는 인간이 참 아름다운 거다. 그같이 귀한 인물은 없다. 일반세상에서도 그 가난하고 험난한 상황과 환경을 다 거쳐 나오면서 정말 자기의 순결을 지켜 나오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도 그런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 돋보인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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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7 요한복음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요5:31-32  김경형목사  2023-07-3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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