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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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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아주 좋고, 나쁜 것은 아주 나쁘고
예레미야 24:1~10
이 시대를 흔히 도덕적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편협한 개인주의와 극도의 쾌락주의가 난무하는, 죄악이 관영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언제나 인류의 현재 시제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정직하고 의로운 이들이 존재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편의 질서와 상식적 가치를 존중하는 건강한 시민이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오늘의 교회가 권력화와 세속화의 길을 걸으며, 아니 스스로 오염된 물을 세속에 흘려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지만 경건하게 살고자 다짐한 의로운 목자와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합니다. 그들은 어두울수록 빛나는 별처럼 하늘에 총총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 놓인 두 광주리를 보았습니다. 한 광주리에는 아주 좋은 맏물 무화과가 담겨 있고, 다른 하나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묻습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24:3 a) 예레미야가 대답합니다. “무화과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아주 좋고, 나쁜 무화과는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24:3b). 당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고냐(여호야긴)와 그 신하들과 고급 기술자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간 후입니다(1). 예루살렘과 유다에는 끌려가지 않은 이들이 있었는데 그게 다행한 일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이들은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멸망과 관련하여 그 백성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대응하십니다.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으로 내쫓은 유다의 포로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겠다”(24:5). 힘없이 끌려간 포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잘 돌보아 줄 것을 확인하십니다. 그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6). 파기된 약속을 복원시켜 ‘나의 백성,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을 천명하십니다. 그러나 유다 왕과 신하들과 유다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살기 위하여 이집트로 간 사람들에 대하여서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나쁜 무화과처럼 만들어 버리겠다”(24:8b)며 부정적으로 대하십니다. 심판을 죄의 대가로 수긍하고 겸손히 대가를 치른 이들과 회개를 거절하고 자기 살 궁리를 한 오만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다릅니다. 좋은 무화과 광주리와 나쁜 무화과 광주리란 유다의 멸망이라는 한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두 종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입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적어도 하나님의 두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심판 후에 희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희망을 기다린다면 심판도 겪어야 합니다. 영혼의 문제도 그렇고, 사회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제는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아직은 희망을 말하기에 이릅니다. 다만 우리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흩어진 자들을 한데 모으시는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흩어 버리는 분이십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려는 이들을 버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지금 이 세상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합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세류에 휩쓸리지 않는 의로운 요셉 같은 이들을 지켜주십시오. 어둠 속에서 빛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욕망을 통하여 자기 구원을 얻으려는 이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주지 말아주십시오.
찬송 : 400 험한 시험 물 속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ZNz9s8afezA
2023. 8. 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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