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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을 섬기기도 하였지만 신들에게 도전한 이들도 있고 신들을 속인 이도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인간으로 신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서양이 기독교 세계가 된 이후 그들은 올림푸스의 신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동안 신들을 힘들게 섬겨온 것이 억울하기라도 한 듯, 원수 갚기라도 하듯 과감하게, 아무런 갈등 없이, 그것이 사명이듯이 일거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겼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하나님께도 도전한다. 어떤 이는 과감히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또 어떤 이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선언한다. 또 어떤 이는 “종교는 아편이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신이라고, 자신이 메시야라고 주장한다. 일부 소수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너무도 많은 이들이 공공연하게 혹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하고 있다. 큰 권력의 소유자, 큰 재물의 소유자, 자의식이 너무 강한 천재적인 인물들뿐만 아니라 신을 섬긴다는 성직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그렇다는 말이다.
서양인들이 올림푸스의 신들을 제거했듯이 우리나라 선교초기 기독교인들은 무수히 많은 토착 신들을 제거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공자도 죽이고 석가도 죽였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학자들이 어떻게 공자를 죽였을까? 문왕, 무왕, 주공, 공자, 맹자는 평천하하지 못했지만 기독교는 평천하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들의 제국주의 침략을 평천하로 착각한 것이다. 초기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은 이유는 예수가 공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국가들이 중국보다 강하고 일본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불교는 유교의 박해를 받았다. 그것이 은연중에 석가는 공자보다 약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공자보다도 약한 석가이니 석가는 예수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처음부터 무기력한 석가는 예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토착 신 들을 제거하고 공자도 석가도 제거한 한국기독교인들은 이제 하나님께 도전한다. 하늘에까지 올라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바벨탑이야기는 아주 옛날 성서속의 설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땅에서도 계속된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일전에 나는 “믿음”이란 “밑힘”에서 왔다고 했다. 무엇을 밑힘으로 하는 것이 믿음이다. 돈을 밑힘으로 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무 많은 이들이 당연히 돈을 자신의 밑힘으로 삼는다. 신과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돈은 믿을 수 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돈이다.
인본주의도 역시 신에게 도전한다. 한때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 유행했던 말이 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다. 거기에 군부독재의 군인정신 “하면 된다.”가 힘을 보탰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억지까지 가세했다. 이러한 말들이 오늘날에는 “긍정의 힘”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 말 이 그 말이다.
이러한 말들이 인간의 능력을 무한으로 끌어올린다.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 이런 말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인간을 너무 신뢰하다 보니 자기반성이 없다. 회개가 없다. 인간을 너무 신뢰하다보니 인간이 신이 된다. 신이 설 자리가 없다.
무슨 말이던지, 어떤 이론이던지 크게 강조되고 보편화를 넘어 절대화되면 악마성을 띤다. 중국의 석학 이탁오는 말했다.
“나는 쉰 이전엔 정말 한 마리 개였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서 짖을 뿐이었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실실 웃을 뿐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는 나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너무나도 절절히 깨닫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능력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을 숭상하는 이들에게 도전한다. 저들은 성서를 믿지 않는다. 성서속의 인간승리만 인용할 뿐이다. 저들에게 신학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인간 심리학이 신학을 대신한다.
나는 저들이 죽여 버린 그리스 로마의 신들 이야기에 흥미가 있고 저들이 무시하는 공자와 석가의 가르침에 감동한다. 저들은 예수의 이름은 부르되 그분의 가르침은 무시하지만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뼈가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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