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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와 우체부
예레미야 25:1~14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십삼 년이 되던 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십삼 년 동안, 주님께서 나에게 계속하여 말씀하셨고, 나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열심히 전하였으나, 여러분은 그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25:1).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는 23년 동안 오직 한 가지 메시지만 전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반응도 없고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예언자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없이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유다가 무너지게 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의미 없는 일을 밤낮 23년 동안 하였습니다. 예언자란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의 메시지를 잡고 평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입에 발린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도리어 상대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마치 우편배달부와 같습니다. 달콤한 연애편지만 배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예언자가 백성으로부터 존경 받거나 권력자로부터 칭송듣는 일은 언감생심입니다.
하나님의 종, 예언자란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전하지 않고 들어야 할 말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돈에 눈이 뒤집힌 세상에서 ‘부자되라’고 복을 빌어주는 일은 반예언자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일수록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눅 6:20, 24)고 강조하여야 합니다. 권력화된 사회에서 너도나도 힘을 숭배하며 땅 투기를 투자라고 미혹하는 이즈음에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 5:5)고 말해야 합니다. 상대를 원수처럼 여기고 악마화하는 시대를 향하여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눅 6:36)고 설교하는 게 옳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하나님의 종, 예언자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당연하고 상식이 되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 시대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잘하지 못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세속적 욕망을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시류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내 종”으로 언급하십니다(9). 주변 나라들을 초토화시키고, 특히 유다와 예루살렘을 패망하는 일에 앞장선 세력의 우두머리를 ‘내 종’이라고 하시는 표현이 낯섭니다. 역사상 최초로 힘을 앞세워 거대한 제국을 이룬 느부갓네살이 과연 하나님의 종일까요?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유다에게 당신의 종 예언자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백성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심판의 구실을 할 종으로 느부갓네살을 보냅니다.
저는 근래 이 땅에서 전개되는 불의하고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권력의 등장과 실정을 비판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권력의 등장에 환호하고 박수치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기독교적이며 몰민족적인 권력을 칭송해마지않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힘을 통하여 세계 통치를 꿈꾸는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 시대 속에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시대와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는 저의 안목이 차라리 틀렸기를 바랍니다. 복음 가치를 배반하지 않는 교회와 순한 양 같은 권력을 기대합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의로운 예언자들의 기개가 꺾이지 않기를 빕니다. 불의한 권력을 통하여 주시는 돌이킴과 성찰의 기회를 인내로 삼겠습니다.
찬송 : 63 주가 세상을 다스리니 https://www.youtube.com/watch?v=AFBjzCjNQM4
2023. 8. 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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