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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 줄 사람
예레미야 25:30~38
하나님은 포효하십니다. 젊은 사자가 으르렁거리듯 하나님의 분노가 치솟고 있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벼락같은 소리를 내시는 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 고함치신다. 그의 거룩한 처소 하늘 꼭대기에서 벽력같은 목소리를 내신다. 그의 목장에다 대고 무섭게 고함치신다. 포도를 밟는 자들처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규탄하여 큰소리를 내신다”(25:30). 하나님의 분노는 절망적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날에는 땅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나 주에게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널려 있을 것이며, 그들이 죽었다고 하여 울어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을 모아다가 묻어 줄 사람도 없어서, 마치 땅 위에 뒹구는 거름덩이처럼 될 것이다”(25: 33). 이미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슬픔과 고통도 크지만 더 가슴 아픈 일은 어디로부터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점입니다. 천애고아 같은 인생, 제 편을 들어줄 누구도 없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할 이웃이 없는 처지가 심판당한 이들의 형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천사가 물을 동할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자가 낫는다는 미신에 의지하여 많은 병자가 모여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렸습니다(요 5:1~9). 서른여덟 해 된 병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물이 움직이면 그는 언제나 뒷전이었습니다. 그보다 날랜 병자들이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병을 치유하는 곳에서 그는 도리어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연못가에는 주랑이 다섯 있었고 많은 병자가 모여있었지만 남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기 병을 고치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이 그에게 다가갔을 때 그가 하소연합니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요 5:7). ‘나는 한 사람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나에게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는 뜻입니다.
종말의 때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었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거리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5:1)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자리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즐비한 서울에는 과연 몇 명의 사람이 있을까요? 함석헌 선생이 <그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만리길 나서는 날/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묻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한 사람’을 갖지 못했습니다. 종말의 때에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고 힘이고 명예이고 권세입니다. 쾌락주의와 이기주의가 사람의 가치를 폄훼합니다. 그런 세상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심판의 마지막 칼끝은 목자를 겨누십니다. “목자들아, 너희는 울부짖으며 통곡하여라”(25:34). 그동안 권세를 누렸지만, 이제는 수치를 당할 차례입니다. 시민이 맡긴 권력을 사유화하고, 시민의 혈세를 맘대로 사용하고, 자기 생각을 교조화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특히 양의 생명을 만홀히 여기는 목자는 반드시 심판받습니다. 자기 국민의 생명보다 이웃 나라 일본의 면피를 우선하는 목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질문하는 시민과 비판하는 언론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는 정부가 자기 절대화의 오류에 빠져 파시스트의 길을 걸을까 걱정입니다. 형제와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권력의 끝은 파멸입니다. 울어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원하지 않은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하늘 백성 위에 주님의 다스림과 섭리가 함께 있기를 빕니다. 38년 된 베데스다 병자에게 사람이 되어 만나주신 주님, 저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고, 의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찬송 : 350 우리들의 싸울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F5h5fJNT7yo
2023. 8. 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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