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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건축
열왕기상 5:1~18
한 나라의 국력과 위엄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건축만 한 것이 없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63빌딩이나 롯테타워 등을 거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대부터 건축은 권력자의 중요한 통치 수단입니다. 그런데 건축이 단지 토목과 설계, 그리고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건축은 거대한 문화와 철학적 사고의 밑절미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입니다. 하나의 건축물에는 문화와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중세 교회의 신학은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교부철학은 신앙이 이성을 포함한다, 즉 종교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앙과 이성이 상호 보완하며 신앙과 이성은 구별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듯 다른 듯한 두 사조는 건축의 꼴에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세의 예술 꼴을 보통 로마네스크와 고딕으로 나눕니다. 로마네스크란 로마풍의 건축으로 10~12세기에 활발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특징으로는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입니다. 치안이 좋지 않았고 전쟁이 잦았던 당시 상황에서 로마네스크 꼴로 지어진 교회와 성은 요새이자 피난처였습니다. 줄 맞추어 세워진 기둥의 구조는 획일화된 질서와 종교적 엄숙성을 보여줍니다. 조화란 엄숙한 질서 안에만 존재했습니다. 구조적 안정성이 우선시되던 시대여서 그 이상을 구상하기에 아직 일렀습니다. 로마네스크는 교부철학을 상징합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전쟁과 갈등의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각 지역에 국가가 형성되어 안정이 정착되었습니다. 도시가 축성되어 무역으로 이룬 부가 정치와 군사의 힘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발달은 학문의 보편화를 가져왔습니다.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학문이 일반인에게 옮겨져 문학이 발달하였습니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으로 동방 문화와 접촉하면서 다른 세계와 사상이 유입되었습니다. 도시의 번성과 학문의 발전, 그리고 이슬람과의 접촉은 새로운 건축 꼴에 대한 요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건축 기술까지 발전하여 도시마다 거대한 대성당들이 건축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딕입니다. 스콜라 철학이 강조하는 신앙과 이성의 합리적 조화가 건축 꼴로 표현된 셈입니다. 고딕의 특징은 빛입니다. 스콜라 철학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름다움을 비례와 완성도, 그리고 명료성으로 정의하였는데 마지막 명료성이란 빛을 뜻합니다. 교회 건축에서 창문이 넓어지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하여 영롱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건축물입니다. 로마네스크가 보수를 강조하였다면 고딕은 보다 자유로운 꼴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 한대로 건축은 고대사회에서 중요한 통치 수단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왕궁을 짓고 성전을 건축하는 행위도 이 범주에 포함합니다. 정적을 물리치고 권력을 차지한 자가 하늘에 궁전을 짓는다는 ‘우가릿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종교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에도 나라를 새로 세운 후 천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근래에는 정치권력을 쟁취한 이가 그 집무실을 옮기는 일도 있었으니 시대가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건축에 대한 바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문제는 솔로몬이 열심히 짓는 성전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무너질 건축물이라는 점입니다. 그의 성전 짓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 그 이상을 보는 계시와 신학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과정으로서 역할이 있다는 점은 긍정하여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사람은 누가되었든 시대의 한계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자기가 지은 성전이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저희에게 과정의 역할에 순종하되 궁극을 바라볼 혜안도 주시기를 빕니다.
2023. 9. 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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