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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조각에 담긴 인문학적 상상
열왕기상 6:14~38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게는 네 살 어린 동생 테오(1857~1891)가 있습니다. 테오는 형의 평생 후원자이자 빈센트의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지지자였습니다. 테오가 없었다면 빈센트도 없을 정도로 형제는 우애와 예술혼이 깊었습니다. 테오가 1889년에 요한나(1862~1925)와 결혼하고 이듬해 1월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테오는 아기에게 형의 이름 빈센트(1890~1978)를 그대로 물려주었습니다. 테오는 편지에서 ‘아이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형에 대한 동생의 지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빈센트는 건강과 행복과 성공, 어느 하나 갖지 못한 자신을 존경하는 동생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는 조카의 탄생, 그리고 자기 이름을 조카에게 물려준 소식을 듣고 그림 한 점을 그렸습니다. 바로 <꽃이 핀 아몬드 나무>(1890)입니다. 동생의 변함없는 존경과 갓 태어난 조카의 삶을 축복하는 상징으로 아몬드 나무는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아몬드 나무는 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생명과 희망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을 받은 테오는 매우 기뻐하며 아기의 침대 위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빈센트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5개월 후 삶을 마쳤니다. 그는 가장 암담한 시절에 가장 희망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안타깝게 테오도 시름시름 앓다가 형이 죽은 지 6개월 후에 숨졌습니다. 한 세기나 앞서 등장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보석 같은 예술은 사장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그의 예술혼을 이어갔습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입니다. 요한나는 빈센트의 그림과 드로잉을 한 점도 빠짐없이 수습하였습니다.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도 모았습니다. 무명의 화가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고흐 회고전을 열고 형제의 편지를 출판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에게도 아빠와 큰아버지가 매우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켰습니다. 요한나는 죽음이 임박해서도 형제의 편지를 번역하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1925년 요한나가 죽은 후에는 아들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일을 이어갔습니다. 빈센트는 큰아버지의 그림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탁했고 정부는 반 고흐 미술관을 건립하여 영구 임대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성전 안쪽 벽에 입힌 백향목에는, 호리병 모양 박과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전체가 백향목이라서, 석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6:18).
본문에는 ‘활짝 핀 꽃 모양’ 표현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18, 29, 32, 35). 여기서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궁금증이 유발합니다. 도대체 이 꽃은 무슨 꽃이고, ‘활짝 핀 꽃 모양’을 성전에 조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꽃이 살구나무라고 추측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 17:8)를 소환하여 성전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해석하는 일도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전 건축 재료로 백향목, 잣나무, 올리브, 종려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살구나무는 재목감은 아닙니다. 식물의 꽃은 과정입니다. 꽃이 아무리 예쁘고 화려하여도 목적이 아닙니다. 다음 단계인 열매에 이러야 합니다. 성전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로 인하여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 단계입니다. 그런 의미로서 ‘활짝 핀 꽃 모양’을 조각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합니다. 개똥신학이었습니다.
하나님, 과정을 무시하고 목적만 중요시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꽃 없는 열매도 없습니다. 오늘 저의 존재가 훗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전 단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 9. 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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