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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
열왕기상 7:40~51
드디어 성전 건축공사가 끝났습니다. 성전을 꿈꾸었던 다윗이 있었고, 그 유지를 받든 솔로몬, 실제로 현장에서 구슬땀을 아끼지 않은 노동자들, 그리고 응원과 성원한 백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마무리를 한 히람의 역할은 앞서 수고한 모든 이들의 땀과 노력을 더 돋보이게 하였고 지켜보는 백성에게 만족을 안겨주었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므로 자신도 빛나는 인물이 있고, 다른 이를 낮추고 무시하므로 자신도 낮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을 높이는 일이 자신을 높이는 일입니다.
성경은 유독 히람의 손끝을 통해 만들어진 놋 장식과 기구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놋 장인 히람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히람이 혼혈인이라는 점은 성전 건축과 무관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가 ‘이 거룩한 성전 건축에 가장 소중한 역할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맡기는 게 온당하냐?’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답이 궁색해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할례는 받아야 성전 건축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교묘하게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여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는 못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여론을 호도한다면 무지한 대중들이 휩쓸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그런 사악한 이들이 많습니다. 반듯하게 살려면 온전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히람 역시 재능을 알아주고 공정하지 않은 공격이나 무모한 험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솔로몬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자신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하여 최선을 다했을 것은 자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고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때 자기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히람 외에도 두로의 많은 노동자가 성전 건축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니만큼 믿음을 요구하는 행위가 논리상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건축 노동자에게 그런 요구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사악한 생각이 도를 넘을 수 있다는 위험을 느낍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혀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는 나쁜 의도는 거룩한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합니다. 둘째는 모든 직업이 거룩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어진 성전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만 거룩한 게 아니라 이 성전 건축에 참여하여 구슬땀을 흘린 노동자들의 행위도 거룩합니다. 목사와 선교사만 성직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은 다 거룩하고 그 직종에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은 다 성직자입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가 보편성과 상식에 대해 공감력의 부족이 아닌가 하여 걱정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일도 있습니다. 구조물로서의 건축은 공정을 따라 마칠 수 있지만 인생으로서 건축은 삶의 마지막까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끝입니다. 끝은 과정의 결과입니다. 과정이 좋아야 완성도 좋습니다.
하나님, 요즘 이 나라에서 행하여지는 정치적 불공정과 비상식을 목도하며 인간의 사악함을 느낍니다. 섬뜩하고 무섭습니다. 상식과 보편적 양심의 시대를 오게 하시고 교묘히 악을 조장하는 이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찬송 :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https://www.youtube.com/watch?v=ctoFTEPgXz8
2023. 9. 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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