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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의 기도
열왕기상 8:44~53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며,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신 게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가치와 지향에 차이가 나더라도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증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알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선입관을 갖고 상대를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합니다. 인생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으며 다윗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위대해도 사람은 천사처럼 살 수 없습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8:46) 한 솔로몬의 말처럼 인생은 모두 죄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는 실패한 후에 드리는 기도처럼 보입니다. 호기로운 상태에서 드리는 승자의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아니라 죄에 무너지고, 원수에게 짓밟히고, 스스로 좌절한 상태에서 드리는 빈손의 기도입니다. 탕자의 돌아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눅 15:11~32).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에 대한 확신이 담겨있습니다. 성전은 인류가 기댈 마지막 언덕입니다. 바로 신앙의 자리입니다.
“또 그들이 사로잡혀 간 원수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 보아 주십시오. 주님께 죄를 지은 주님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거역하여 저지른 모든 반역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 앞에서도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하셔서, 사로잡아 간 사람들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여 주십시오”(8:48~50).
성전이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장소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하여도 어머니는 용서할 줄밖에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운명입니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양육하듯이 교회는 성도를 소중하게 키웁니다. 교회의 젖을 먹지 않고는 성장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자녀의 잘못을 제 잘못으로 받아들여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이 정신이 쇠퇴하는 때가 종말이고 그런 장소가 지옥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회는 어머니의 자리보다 여왕의 자리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교회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부터이지 싶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고 권세를 자랑하며 우쭐거리면서 본래 자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골방보다 호사한 왕좌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성공지상주의의 불순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멈추지 않는 한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용맹한 전사를 환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실패자와 낙오자를 안아주는 자리입니다. 이 구도가 회복되지 않으면 신앙은 장식에 불과합니다. 희망은 싸워서 얻는 게 아니라 환대와 용납을 통해 실현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경우에라도 주님을 향할 때 저희를 용납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비록 저희가 죄악 중에 있더라도 주님께 돌아오려는 마음이 변함없기를 빕니다. 이 믿음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2023. 9. 2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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