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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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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토요 교역자 대상 신학 및 성경공부 |
◆ 노아 때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고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살아남았다. 대홍수로 인해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게 되었고 비가 그치고 물이 점점 갈하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이에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자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날아다니며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또 비둘기를 내어놓으니 온 지면에 물이 있어서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고, 칠 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니 저녁때에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서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다.
목사님들이 성경을 풀어서 말할 때는 이룰구원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노아가 대홍수 중에 비둘기를 날려 보낸 것을 성령을 날려 보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느냐? 노아가 하나님이 된다. 그런데 성경을 자꾸 이런 식으로 푸는 사람이 있다. 또한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비둘기가 평화의 소식을 가져온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 성경은 계시가 아닌 일반개념이 된다.
잠: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했다. 장소나 시간이나 모임이나 개인이나 단체에 맞는 말은 가뭄에 단비와 같다. 전쟁할 때 적군 한 명을 향해 무조건 대포를 쏘면 안 된다. 적절성이 있는 거다. 우리가 전도한 후에 돌아보면 상대에게 말할 때 미처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할 말을 못 해서 께름직한 게 있다. ‘그때 이 말이 합당한 건데 그때 왜 이 말이 생각이 안 났지?’ 하는 게 있다. 이럴 때마다 성경을 보면서 재무장을 해야 한다.
방주를 떠난 까마귀가 날아가서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 까마귀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썩은 송장을 먹고 살았구나. 왜냐? 물 심판으로 모든 생물이 죽었기 때문에 물 위에 많은 송장이 떠돌아다녔을 거다. 방주를 교회로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세상정신으로 살면 사망권 사망계에 들어가서 썩은 송장을 먹고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거라사인 땅에 더러운 귀신 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 거했는데, 이들이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생명권에 거해야 사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거지 사망권 안에서는 죽은 것을 먹게 된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불타고 썩고 없어질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는 것은 귀신 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죽은 송장을 파먹고 사는 것과 같은 정신이라서 이 사람의 삶은 사는 것은 없고 죽고 썩는 일만 하게 된다.
그러면 노아 때에 홍수에 죽은 자들이 홍수 전에 어떻게 살았느냐? 한 마디로 사망성으로 살다가 홍수에 죽었다. 대홍수가 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기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시에 땅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했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천사라면 물에 빠져 죽겠느냐?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국을 상속받을 교인으로 봐도 된다.
물에 빠져 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수영을 못해서 죽었느냐?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안 믿은 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정신과 사상이 세상을 붙잡고 살면서 세상에서 영웅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다.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취해 돌아가니 세상으로부터 영웅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거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하면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중심 사상이 세상성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 이들이 누구의 정신을 받은 거냐? 가인이다. 가인이 예배를 안 드렸느냐? 드렸지만 피 없는 제사를 드렸다. 즉 육적인 소원 목적으로 제사를 드렸고, 육적 세상적인 소원 목적으로 기도를 했고, 육적인 소원 목적으로 세상을 살았다.
오늘날도 믿는 사람이 세상의 소원 목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가인의 제사다. 믿는 사람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종교적 부흥을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이런 소원 목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가인의 예배 사상이다.
롬:에서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는데,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된다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물질적인 개념으로 누림성으로 나가고, 외형적인 부흥 발전으로 나가고, 건물이나 사람의 숫자나 헌금이 많은 쪽으로 나가는 사상을 말하는 거다.
노아 당시에 무슨 큰 전쟁이 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가인의 정신으로 사는 게 노아에게는 환난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의 후손과 짝을 지어서 그렇게 나가니 노아는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하면서 걱정과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이게 노아에게는 환난이다. 오늘날 교회를 바라볼 때 이 환난이 보이느냐?
‘예수께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의 사람, 천국의 교육,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복음이다. 천국은 본점이고 교회는 이 일을 하는 지점이니 지점은 본점을 닮아야 하는데 마지막 시대에는 교회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서지 못할 곳에 세운다. 즉 세상에 속한 것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놓는다. 기도가 그렇고 설교가 그렇다.
성경을 역사적으로만 보면 성경을 가견적인 세상에 붙여서 해석하게 된다. 성경의 역사는 구원도리를 깨닫게 하는 비유이니 우리는 역사 속에 들어있는 보화를 캐내야 한다. 성경을 문자대로만 말하면 가룟유다만 보이고 사울 왕의 잘못만 보이기 때문에 자기는 못 보고 그들을 정죄하는 것으로 끝난다.
성경을 통해 자기를 보려면 성경의 역사나 사건이나 인물의 표면만 보지 말고 성격과 성질과 성분을 봐야 한다. 질적인 면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본질과 다른 것은 못 보고 일반적으로 도둑질을 안 하고, 거짓말을 안 하고, 열심히 사는 것을 기준으로 신앙을 말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를 못 본다.
사람마다 성격과 성질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니 믿는 사람은 모두가 자기의 성격과 성질과 성분을 성경에 맞춰야 하는데 이게 없이 자기 주관대로 믿는다면 이 사람에게는 성경이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 목사님이 옳은 설교를 하면 ‘아멘’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지 않고 ‘저 목사 말대로 하면 어떻게 세상을 사느냐?’라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다면 어쩌자는 거다. 이것은 이치에 안 맞는 고집이다.
성령은 영이시고,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감화 감동을 입히는 것은 성도의 영을 위한 거겠느냐, 육을 위한 거겠느냐? 영을 위한 거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육을 위한 거냐, 영을 위한 거냐? 교회는 모든 것을 성령의 눈으로 봐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신앙 사기를 당한다.
마:에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라고 했는데, 원수가 자기 가정에도 있다는 거다. 이것도 환난이다. 이런 와중에 ‘내가 그리스도라. 내가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면 이런 자들에게 속게 된다.
거짓 목사는 속이 하나도 안 바뀐 채 세상이 가득 들어있다. 지식도, 지혜도, 도덕성도, 옳다고 하는 것도 전부가 세상이 기준으로 되어있다. 그러면서 성경을 붙여서 말을 한다. 이런 것을 성령의 눈이 아니면 알아보지 못한다.
마귀가 무당보다 못하냐? 도수가 무당보다 훨씬 더 높다. 우리가 이 마귀를 알아봐야 거짓 목사를 알아볼 수 있다. 껍데기 표면을 주격으로 보는 사람은 무당이나 마귀에게 100% 속는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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