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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말아라”
열왕기상 12:12~24
이스라엘이 건국 후 가장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의 원인은 솔로몬의 치세에 이루어진 과도한 징세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서투른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왕 르호보암은 무지했습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역사의식도 없었고 상식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백성을 대하는 자세는 포악하였고 말투도 거칠었습니다. 충신과 간신을 구별할 줄 몰랐고 미래 비전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왕이 백성에게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으므로, 여로보암과 온 백성은 사흘째 되는 날에 르호보암 앞에 나아왔다. 왕은 원로들의 충고는 무시하고, 백성에게 가혹한 말로 대답하였다 (중략)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12:13~14).
이런 자가 왕이 된 것은 순전히 왕조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왕조시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일은 무수히 반복되었습니다.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국기를 어지럽히고 인류를 슬픔에 몰아넣고 역사를 후퇴시킨 일은 많습니다. 루터의 나라 독일 시민이 히틀러를 뽑았고, 교회의 나라 이탈리아가 무솔리니를 지지하였는가 하면 청교도의 후손이 트럼프를 세웠습니다. 파시즘의 등장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과입니다. 시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뜻밖의 인물이 지도자가 되어 호가호위합니다. 민주제도가 만능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절차를 따라 악한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민주주의는 훌륭한 지도자 선출에 중점을 두기보다 혹 시민의 선택에 오류가 있어 악한 지도자가 뽑히더라도 그가 자기 마음대로 국정 운영을 하지 못하는 면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삼권분립 같은 예가 그렇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 망국 병인 지방색이 등장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열 지파가 르호보암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여로보암을 왕으로 뽑았습니다. 일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나라를 쪼개기까지 하지는 말았어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힘으로 권력을 찬탈하지는 않았으나 그에게서도 아쉬움을 느낍니다. 혹 열 지파 백성이 반역을 획책하며 새로운 나라 건설을 요구하더라도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백성입니다’하여 왕국 분열의 파탄을 막고 다른 방안을 찾았어야 합니다. 정치는 최악을 막고 차악을 선택하는 기술입니다. 차선보다 최선에 헌신하는 믿음입니다. 르호보암의 무지와 폭압도 문제지만 여로보암의 무책임도 칭찬거리는 아닙니다. 물론 오늘 같은 정치제도가 아니라서 르호보암이 선택할 입지가 좁았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온 유다의 가문과 베냐민 지파에 동원령을 내려, 정병 십팔만 명을 선발하였다”(12:21). 르호보암은 힘으로 이스라엘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동원령을 내려 군대를 징집하여 북쪽의 열 지파와 전쟁을 하려는 계책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라”(12:24). 주님께서 전쟁을 막지 않으셨다면 유다와 이스라엘은 모두 어마어마한 슬픔과 고통에 직면하였을 것입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이, 그가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하나님, 지금도 권력을 숭배하는 이들은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무지하고 악한 지도자일수록 힘으로 평화를 사려고 합니다. 지금 이 나라를 보면 딱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전쟁을 막아주십시오.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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