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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속지 말아야
열왕기상 13:11~19
이스라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가장 처음의 공동체이면서 가장 확실한 장소입니다. 교회도 그 맥락을 이어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신자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예수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며, 성도 사이에 진실한 교제를 실현하고, 세상을 온전히 섬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시당하고 배반하는 일도 있습니다. 거룩하지도 않고 경건하지도 않으며 보편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교회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일을 신앙의 방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그런 교회를 거부하고 개혁하는 일이 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질서에 사는 이들은 교회를 성역화하고 절대화하고 교회의 질서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교회 역시 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인간의 집합체이므로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탐심과 권력욕 등 노골적 욕망이 거룩으로 위장하기 좋은 은신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제도와 전통과 의식, 그리고 가르침 속에 스며든 본질 아닌 것을 찾아내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속고, 진리가 진리에 걸려 넘어지고, 하나님의 뜻하심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좌절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선지자는 자기 할 일, 곧 베델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한 후 지체하지 않고 왔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과 달랐습니다. 그는 ‘다른 길’로 갔습니다(13:11). 그런데 이런 사실이 베델의 한 늙은 예언자에게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늙은 예언자는 서둘러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뒤쫓아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함께 우리 집으로 가서, 무엇을 좀 잡수시고 가시지요”(13:15). 위험을 무릅쓰고 적지에 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돌아가는 고단한 하나님의 사람에게 더없이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이를 거절합니다. “나는 노인 어른과 함께 돌아가서 노인 어른의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이 곳에서는 누구와 함께 밥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여기에서는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온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13:16~17). 하지만 노인은 따뜻한 위로의 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설득하였습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예언자요.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도 대접하고 마실 물도 대접하라고 하셨소”(13:18). 물론 이 말은 거짓입니다. 결국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노인의 집에 가서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이라는 독 사과(?)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말씀 전하는 자를 지나치게 신뢰합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설교자가 방귀를 뀌어도 ‘아멘’합니다. 사실 설교자의 지성 수준과 사회의식이 우리 사회 평균에 미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 이들이 강단에만 서면 세상 모든 비밀을 아는 것처럼 허풍떠는 꼴을 방치하면 교회는 희망 없음의 외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자들이 정신 차리든지, 그리스도인들이 가려듣든지 해야 합니다.
하나님, 설교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세상을 절망으로도 이끕니다. 거추장스러운 가운 한 장 걸치고, 되지 않는 말로 거들먹거리는 설교자의 꼴이 가관입니다. 이 땅에 설교의 혁명을 이끌어 주십시오.
2023. 10. 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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