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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공동화 현상
열왕기상 14:1~20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만 본다면 모든 인간은 천사 같습니다.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수고는 기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합니다. 이런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담긴 사랑을 자양분 삼아 자녀들은 성장합니다. 자녀 사랑에는 의인과 악인이 따로 없습니다. 자녀를 대하듯 다른 이를 대한다면 세상은 하루아침에 천국 같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여로보암 조차도 자녀 사랑에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입니다.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습니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자녀 가운데에 유일하게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품성을 지녔습니다(13). 여로보암은 아내를 실로에 있는 예언자 아히야에게 보냈습니다. 아히야는 여로보암 앞에서 자신의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는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분열과 여로보암의 즉위를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11:31~39). 여로보암은 아히야에게 가면 살 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사회 속의 교회가 갖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데 요즘은 교회 문제를 세속사회가 풀어주겠다고 하니 참 딱하고 슬픕니다.
본문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사람이 아예 없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로보암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을 파직하는 등 기존의 신앙 제도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 백성이나 원하는 자를 제사장으로 삼아 금송아지를 섬기게 하자 그 불의를 참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대거 남 왕국 유다로 피난을 갔습니다. 북 왕국에 거룩의 공동화 현상이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베델에는 늙은 예언자가 있었고(13:11), 엘리와 사무엘의 전통이 살아있는 실로에는 예언자 아히야가 생존하였습니다. 남한교회는 해방과 더불어 북한 교인들의 피난으로 성장하고 부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북한 땅에 거룩의 공동화현상이 나타났음은 자명합니다. 만일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본래의 자리에서 일제 강점기 때의 결사 각오 정신으로 교회와 신앙을 지켰다면 북한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세상, 지금보다는 훨씬 유연한 사회가 펼쳐졌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북한에도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종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책무가 있습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성찰에 이르고 희망을 잇고 싶은 생각입니다. 함부로 남을 단죄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여로보암의 착한 아들 아비야를 왜 죽음에 이르게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악하고 못된 아들을 불러가고 아비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생각을 가진 아들에게 선정을 베풀 기회가 주어졌다면 남과 북의 왕조가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신묘막측하여 아둔한 인간의 이성으로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오늘 우리 공동체에도 조금 더 착하고 의로운 이들이 세상을 섬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악하고 불의하고 교활하고 우상과 미신을 신봉하는 일을 다반사로 하는 권력 숭배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 저희가 절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곳에 하나님의 희망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특히 북녘땅에 저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적 생명이 움트게 하시고 텅 빈 것 같지만 그 안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은총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2023. 10. 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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